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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0:19-31 참 평안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제자들은 두려웠다. 자신의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고백한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지만 그 마지막은 십자가였고, 예수님은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제자들은 당연히 믿지 못했고, 두려웠을 것이다.

2. 19절 상반부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꽁꽁 숨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시점이었다. 

3. 그러나 닫힌 문들을 뚫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절 하반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강, “샬롬'을 이야기 하신다. 

4. 그리고 또 한 번 예수께서는 샬롬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절) 두 번의 샬롬을 말씀하신 이후에 성령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2절)

5. 샬롬, 평안은 우리에게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의심이 있는가? 얼마나 자주 그러한 감정과 현실에 맞닥뜨리는가? 그 두려움 속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다면 우리에게 평안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6.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오신 그 순간 제자들은 그제서야 기뻐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절). 내 안에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함께 하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7. 오늘 나의 삶은 누구와 걸어가고 있는가? 나의 목표, 나의 결심, 나의 만족을 이뤄내기 위해 평안 없이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께서 내 안에 머물러 계실 틈도 없이, 예수님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나의 것들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삶에는 결코 샬롬이 있을 수 없다. 

8. 부활절을 맞이해서 교회가 첫 예배를 과학교육센터 안 회의실에서 드렸다. 넓은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는 에게이로 까페에서 드리는 것 과는 또 다른 감동과 감격이 있었다.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들이 늘어나고, 교회가 세상을 더 많이 섬길 수 있고 참 감사하다. 선교사로써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는가? 그러나 규모가 커지는 것, 교회가 성장하는 것으로 인해서 나와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관계가 깊어지지 못하고 평안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더욱 더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럴 수록 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럴 수록 더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각 사람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의 성숙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9. 교회는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속에서 계속해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평안은 골방에서 나온다. 평안은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다. 평안이 내 삶에 있기를 원한다. 

10. 여러분들의 오늘에도 평안이 있길 원한다. 오늘도 샬롬

*교회가 부활절을 기점으로 과학교육센터의 회의실 한 곳에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음향과 악기를 설치하고 하는 시간도 더 많이 들고, 저희가 사용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장소를 더 많은 태국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처소로 사용하여 주시고, 모든 성도들이 이 장소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더 높이 높여드릴 수 있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샬롬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늘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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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