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요 21:15-25 주님께서 아신다

1.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 당하시는 동안에 3번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래서 신학자들 중에 이런 베드로의 무너진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서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3번을 물으셨다고 한다. 일정부분 동의가 된다. 

2. 그러나 첫 번째 질문과 두, 세 번째 질문이 살짝 다른데 첫 번째 질문에서 먼저 멈추게 된다. 첫 번째 질문은 비교급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15절) 비교급의 의미는 다른 제자들이 사랑하는 만큼 베드로도 주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계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짜증이 났을수도 있겠다. 

3. 왜냐하면 다른 제자들은 도망간 이후 주님이 고통당하시던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님을 따라오지도 않았기에 부인할 기회 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따라 온 베드로에게 ‘네가 다른 제자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을 하시면 베드로의 마음이 억울하지 않았을까? 

4. 성경은 베드로의 어떤 억울함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는 내가 억울하다. “예수님 저 나머지 제자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게 도망갔는데, 저는 그래도 주님을 따르다가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따르다가 생긴 영광의 상처 아니겠습니까?” 라고 내가 항변하고 싶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대답한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15절 하반부)

5. 베드로의 대답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가 억울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부인도, 주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베드로의 심정도, 코빼기도 안 보이던 제자들과 비교 하시더라도 베드로가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주님께 항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6. “주님께서 아신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너무 무책임해보이고, 나와 상관없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진짜라면, 이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억울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이 억울하고, 속상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7.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이러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트라우마 처럼 남아서 나를 힘들게 하고,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것을 힘들게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순간 속에서 내가 여전히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걸음을 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8. 주님이 내 이름을 아신다. 주님이 나의 사랑을 아신다. 주님이 나의 어려움과 힘듦을 아시고, 주님이 나의 그 환난과 고통을 아신다. 아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함께 계신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8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시는 것은 단순히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아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해는 지식으로서의 앎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앎이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아신다는 것이다. 

9. 주님이 아시는데, 주님이 이해하시는데, 굳이 뭘 더 항변하고, 굳이 뭘 더 말하겠는가? 내가 할 일은 그 주님과 함께 걷는 것, 그 주님과 함께 오늘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주님께서 아신다. 할렐루야!!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