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1-11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가운데 아주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고 인내함으로써 드디어 유다의 왕이 되었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아니라 먼저 헤브론에서 남쪽 유다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되기 이전의 다윗의 태도는 아주 주목할만 하다. 다윗은 물었다. 1절에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하셨다. 다윗은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가리이까?’ 그 질문에 하나님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고,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다의 왕이 된다.
다윗은 묻는다. 판단의 기준이 결코 자신의 생각이나 어느 것이 유리할까에 대한 자신의 고민들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시는데로 다윗은 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윗은 치밀하게 물었다.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순종하였다. 어제 정갑신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인상깊은 말이 나왔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듣지 않으면 두려움의 소리로 부터 듣게 된다’ 그렇다. 우리 삶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 모르는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않는다면 그 이후는 불을 보듯 뻔한다. 내 안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 원수들의 소리가 들리게 되고, 그러한 소리가 들리게 되면 두려워하게 되며, 두려워하게 되면 더 듣지 못하고, 급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비자의 문제이다. 미리 한국에서 같이 협의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비자를 주려고 했던 형제교단연합회 쪽에서는 잘못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쫓아가려고 내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일날 처음 비자문제에 대해 듣고 매우 심각했었다. 우리가 괜히 주님의 음성 듣고 한 걸음씩 간다고 한 것일까? 뭔가 풀리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리가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염려도 생겼다. 하지만 어제 정목사님 설교와 또 주일, 그리고 오늘 큐티에서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내용은 동일하다. 주님께 묻고 들으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답답함, 막막함, 두려움에 함몰되어 그것들로 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오늘은 좀 더 묻기 원한다. 비자에 대해서 사역에 대해서 좀 더 묻기 원한다. 하나 들었다고 묻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묻기 원한다. 그러려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두려워도 결코 두려움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오직 주님께 묻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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