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49:23-39
오늘 말씀에는 세 나라가 나온다. 각 나라는 각 나라만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신다.
다메섹은 낙담함, 흔들리는 마음이 그들의 죄였다. 게달과 하솔은 삶의 부유함을 통해서 마음도 부유했던 것 같다. 엘람은 활(힘)을 의지했다. 어찌보면 그렇게 큰 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죄들이 과연 그들이 죽을만큼의 죄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39절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하며 회복을 선포하신다. 오늘 전체 본문이 한 성경구절을 떠오르게 하였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라는 것은 다 똑같다. 죄는 죄이지 심한 죄와 약한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죄든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좀 먹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서 멀게 한다. 그런데 어느새 내 안에 죄의 경중을 따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저건 큰 죄니까 죽을만하고, 저건 작은 죄니까 죽을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심한 혹은 중한 죄 때문에 죽으신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죄, 우리가 작게 여기는 죄를 통해서도 죽으신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롬6:23을 통해서 죄의 결과가 사망임을 선포하고 있다. 어느새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죄의 심각성은 잊어버리고 죄의 경중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삶의 목적은 거룩이다. 레위기 11:45에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함을 더욱 더 쫓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고 싶다. 결코 내가 죄의 경중을 따지는 판단자,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로마서 6:23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건져주심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의 은혜가 임한다. "But Christ"의 은혜가 임한다. 우리를 통한 은혜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이다. 그것은 오직 주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오직 주님을 더욱 더 의지하기 원한다. 판단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에게도 but Christ의 은혜가 임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오직 그리스도만 간절하게 구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원한다.
오 주님 나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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