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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뭔가 꽉 막혀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런데 시편기자는 기도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때에 기도한다.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은 1절을 보면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다.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고, 답답하고, 꽉 막혀 있는 그 때에 기도를 하는 것도 너무 대단해 보이는데,
그의 고백은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다.
난 저런 상황이면 기도를 못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기껏해야 ‘하나님’을 수 없이 되내이는 정도 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 시편기자는 그 모든 일 앞에서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기를’믿고 있다. (13절)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열린 상황이든 꽉 막힌 상황이든 기도가 답이다.
어제 아이들 문제로 아내와 대화하는데 이 상황이 정말 꽉 막힌 느낌을 받았다.
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 아이들이 드리는 수요예배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빠가 선교사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나 엄해지는 것을 보았다.
일어설 때 일어서지 않는 것, 힘들다고 말하는 것,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고,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꾸만 강요하였다. 그리고 말이 자꾸만 엄하게 나갔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예배를 가르쳐야 할지, 나는 아빠로써 또한 선교사로써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고민이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이야기 하면서 그 갑갑함에 속이 상했다.
예준이를 양육하는 문제와 더불어 생각이 쉽지 않았다. 예준이가 사춘기가 조금씩 시작되나보다...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계속 기도해왔는데,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들 속에서 정말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와 같았다.
이 꽉 막힌 것 같고, 답답하고, 모르겠는 이 상황 속에서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시편의 기자처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이 시편의 기자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기도해야겠다.
기도해야겠다.
아이들이 어려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리고 아이들이 이 급변한 상황과 자신들도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보이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더라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과 예배를 받으심을 가르쳐야겠다.
주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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