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4:18-25
하나님께서 다윗에서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리라고 한 곳은 이방인의 집이었다.
이스라엘식 이름도 아닌 그는 여부스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개처럼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었는가?
하지만 다윗은 일말의 의심도 없다.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베드로가 백부장의 집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이상을 보면서도 망설였던 것과 참으로 대조된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무엇인가를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했음이 아닐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방인의 집 타작마당에서의 예배에 그는 아무런 의문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그 단순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재앙을 그치게 하였다.
순종하면 되는데... 자꾸만 내 논리, 내 생각, 내 합리적인 추론에 빠질 때가 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함에 있어서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가 가장 어려운 고비이기도 하다.
왜 내가 이해가 되어야 하고, 왜 꼭 합리적이어야만 할까?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내’가 이해가 되어야 하고 ‘내’ 생각에 합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병에 걸리게 되었다.
집에서 막내 마라가 ‘내가’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고, 엎고, 망치는가?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나도 그 ‘내가’병에 걸려서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하려 하고 ‘내가’ 생각하려 하고
‘내가’ 순종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오늘 하루는 ‘내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순간순간 나는 작아지고, 그는 커지는 삶을 보내고 싶다.
매일 고민하고, 매일 묵상해도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기도하며 다시 적용한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도 ‘내가’가 아니라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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