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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6:9-20 약속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을 기쁨으로 살아낼 수 있다.
맹세는 맹세를 자신이 어길 때 그것을 대신 지켜줄 수 있는, 즉 자기보다 더 힘이 센 그 누군가를 언급하며 맹세를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맹세를 다른 이름으로 하실 수가 없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분은 스스로의 이름으로 맹세하셨다.
그보다 더 크신 분이 없고, 그 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 맹세를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주셨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다시 17절부터는 그 맹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언급하고 있다.
히브리서를 읽게되는 사람들은 지금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핍박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이 편지를 읽게 되는데, 저자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꺼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분이 약속을 절대로 어길 수 없으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그 분의 성품 그 자체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다시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 그 약속 또한 유효한 것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 당장 귀에 들리지 않아도, 지금 당장 느껴지지 않아도, 그 약속은 유효한 것이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예수의 부활과 다시 오심은 없을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회로 보여진다. 우리도 잠시만 마음을 놓치면 예수님의 재림은 멀어보이고, 현실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연약함은 더욱 더 크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살아가지만 보여지는 그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 약속을 신뢰함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하시고 가신 약속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도 그 약속 위에서 현실을 살아내는 삶이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 조금 불편하고, 지금 조금 고생스럽고, 지금 조금 애매해도 괜찮은 것이다. 주님께서 나중에 채워주실거다.. 이러한 것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그 분과 지금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현실이 대부분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이는게 사실이다. 삶의 대부분의 순간 하나님은 작아 보이고, 현실은 커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현실은 나에게 어떠한 맹세도 약속도 해주지 않는다. 약속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두렵지만 소망을 가진다. 그 소망을 주신 분이 진짜이시기에, 그 소망을 허락하신 분이 분명히 이루실 것이기에...
오늘도 주님만 붙든다. 작은 일에서부터 주님을 붙든다. 그리고 그 소망을 다 잡는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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