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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7:1-10 족보를 갈아탄 우리들

오늘 본문에는 족보가 없는 자가 나온다. 그의 이름은 멜기세덱이고 풀자면 멜렉=왕, 체덱크=의(Righteousness), 곧 의의 왕이다.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절). 그 뿐 아니라 그는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족보가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니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3절). 한마디로 신비로운 존재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왜 족보가 중요했는가? 족보는 그들의 신분이 누구인지, 그들이 누구의 자손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디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임을, 그들이 선택받은 민족임을 보여주는 유일한 지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족보는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즈음 핫한 드라마인 ‘미스터 션샤인’과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뉘집 자식인지가 매우 중요하고, 그 뉘집 자식인지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종의 자식이나 백정의 자식은 그 족보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유대인들도 이러한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신의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린 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존재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는 십일조를 받은 후에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축복은 항상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 어떤 존재라고 보기도 한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여기서 보고 싶은 사실은 바로 우리가 역시 족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족보가 없다 못해 개 취급 받았던 이방인이 바로 우리란 것이다. 우리는 이 족보 없는 존재인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접붙임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다. 원래는 우리가 죄의 자식들이요, 죽음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임이 우리의 족보를 통해서 결정된 자들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죽음으로 달려갈 존재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족보가 필요 없는 아들을 족보가 없어서 미래가 안보이는 우리를 위해서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족보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는 죄의 자식이었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통해 구원하신바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족보에 들어간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족보를 갈아탄 자가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죄의 자식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과 같이 우리의 족보를 자랑하고, 그것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의 신분과 삶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종에서 양반의 족보로, 즉 우리의 족보를 예수님의 족보로 갈아탔으니 이제는 양반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것이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뉘집 자식인지 기억하기 원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피로 족보를 갈아탄 자이다.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으로 죽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큰 일에서 죽는 것은 쉽지만(상대적으로), 사실 일상에서 작은 일에서 죽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이 내 삶을 다스리신다는 것이 내 삶의 작은 영역에서 부터 나타나기 원한다.
상냥한 말과 사랑의 눈빛, 내 뜻과 생각과 다를지라도 순종하는 모습
그리고 복음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몸짓...
오늘 하루도 복음이 내 삶을 휘감아서 내가 복음을 삶으로 가족들에게 태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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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