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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4:14-5:10 예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순종의 비결이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과 두려움, 절망, 연약함을 모두 겪어 보셨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겪어야만 할 모든 고난들을 감내하신 것이다 (15절).
그래서 그 분께서는 우리를 이해 하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께 나아가야만 한다.
어제 참된 쉼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묵상했다.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이해하시는 그 분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서 쉴 수 있겠는가?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쉬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분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16절). 그래서 우리는 그 분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왜 담대함이 필요한가? 우리는 연약할 뿐더러 죄가 가득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매일을 살아가는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그 우리의 연약함을 체율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용서하실 것을 굳게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아야 하지만, 죄를 지었을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바로 예수님 앞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이해하실 수 있고, 예수님 한 분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예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
8절에는 좀 놀라운 표현이 나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7절에 보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그리고 또한 고난을 당하심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아들이신 그 분 조차도... 눈물과 기도와 간구와 고난으로 배우신게 순종인데...
물론 순종했던 그 일의 클라스가 다르긴 하지만...
예수님이 저 정도로 하셔서 순종하셨는데 내가 순종하는건 불가능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맞다. 사실 불가능하다. 내 수준을 아는데 어딜....
그래서 나는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길 원한다.
내 수준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만 의지하기 원한다. 예수님만 간절히 바라보기 원한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다. 선한 것이 없으니 당연히 순종도 할 수 없다. 내 힘으로 순종하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 뿐이다.
오늘도 그 분 앞에 나아가는 내가 되기 원한다.
기도로, 말씀으로, 삶으로... 예수님과 분리되지 않고, 그 분과 연합하는 삶을 살아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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