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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7:20-28 율법은 할 수 없는데, 복음이 할 수 있는 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율법적인 관점으로 누군가를 보는 것일 것이다. 율법적인 잣대를 대고 잘한다, 못한다를 구분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발생했을때 너무나도 쉽게 저렇게 했기 때문에 저런일이 생겼을거라 너무 빨리 짐작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보면 율법도 사람(제사장)을 세울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율법이 세우는 것은 흠이 많은 것이다. 율법은 절대로 그 누구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말씀으로(복음으로)는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으로 세워진 아들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절대로 율법이 기준이 되면 안된다.
나는 매우 율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우리 태국의 형제들을 대할 때에도 내 머리 속에 그 기준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은혜와 복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인 잣대가 먼저 튀어나온다. 율법은 결코 아이들을 형제들을 세우지 못한다. 필요한 기준은 말씀으로 세워진 예수님이시다.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의 기준으로 모두를 봐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나 까지도 말이다. 자주 힘든 이유는 복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율법이 무용하며,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율법과 아들(복음)이 부딪칠 때는 당연히 율법을 버리고 아들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제사장만을 세울 따름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잘하고, 잘 지키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내 눈이 더 가고, 내 마음이 편한 것은 율법적인 접근이다.
아들의 접근(복음적인 접근)은 이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잘하든 못하든, 잘 지키든 못 지키든, 문제가 생기든 안생기든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생명의 관계는 아들을 세우고, 아들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어떻게 복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것인가?
어제 영어수업에 한 자매가 나오지 않았다. 벌써 두 번째이다.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그 이유가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벌써 내 마음에 판단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순종과 불순종’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대며 다그치기 시작한다.
내가 복음으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율법을 강요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다시 붙잡기 원한다.
율법으로 사람을 세우지 않고, 율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복음으로, 아들로 그들을 바라보기 원한다.
내가 먼저 아들에게 푹 잠겨서, 아들로 생각하고, 아들로 말하고, 아들로 행동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 자신부터 보며, 아이들과 형제들을 또 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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