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9. 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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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7:1-12 예수님 옆에 껌딱지 되는 하루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다스리신다(1-6절).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는 그 하나님, 온 우주를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7절에 조각한 신상을 섬기고, 허무한 것들을 자랑하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의 끝은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만든 혹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무엇인가를 하나님 대신 섬기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10절은 다시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우리는 여호와를 사랑하면서 또한 악도 사랑할 수 없다. 여호와를 섬기면서도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우리의 모든 삶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동시에 사랑하거나 가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된 하나는 오직 하나님이어야만 한다. 

매일 매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하나님과 나머지 것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기란 참 쉽지가 않다. 앞 쪽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것을 알면서도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한다. 내 결정을 신뢰하려고 하고, 내 감정과 내 상황과 내 환경을 내가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나를 신뢰하려고 한다.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것도 사랑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내 평생 끝나지 않을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금식을 마치신 후 왔던 사단의 시험에 예수님은 이기셨다. 그런데 나는 못 이긴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든다. 예수님은 붙들어도 되고, 안 붙들어도 되는 그러한 분이 아니다. 무조건 붙들어야 하는 그런 분이다. 나를 바라보며 더 절망할 때 더 예수님을 붙잡는다. 오늘도 나의 죄성을 바라보며 절망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 붙든다. 오늘도 그 새로우신 예수님을 더 붙들고 살아가기 원한다. 순간 순간 쉬이 잊어버리기에 내 손에, 내 눈 앞에 말씀을 써 놓으며 그 분을 쫓아가기 원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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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