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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3:19-39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시기에, Therefore I will hope in Him.
내 마음에 고난과 슬픔을 담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22-23절 때문이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가장 깊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지금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분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이다.
자신들의 죄악들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정말 그 어느 것 하나 선한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때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징계를 주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것 이외에는 답이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징계를 받는 것이 맞다. 죄의 결과이니까… 하지만 죄로 인한 징계 혹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분의 인자와 긍휼, 성실하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시 회복되고, 다시 하나님과의 은혜의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지금 당장 갑갑하고 답답해도 그 분의 성품을 의지하며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을 25-26절에서 다시 이야기 하고 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보이지 아니하는 막막함, 답답함,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겪는 모든 고난과 고통,
그 속에서 우리가 참으로 의지할 것은 언제나 선하시고, 언제나 자비하시며, 우리의 어려움과 슬픔을 모두 체율하신 예수님 한 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이해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도우신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나의 기업이 되시는 것이다 (24절). 한글성경에는 그래서 내가 그를 바라리라 라고 24절의 뒷부분을 번역하지만 ‘바라리라’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뜻을 찾아보니 소망을 가지다, 기다리다 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 ESV는 therefore I will hope in Him. 이라고 번역했다. 여호와가 나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내가 오늘도 소망이 있는 것이고, 이 어려움과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근거 있는 소망과 근거 있는 기다림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기를 원한다. 삶의 막막함과 답답함 속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가장 선하시고, 가장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어 주심에 오늘을 또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
내 삶에서 더욱더 주를 바라보기 원한다. 내 시선이 주님께 고정되기 원한다. 오늘은 주님이 나의 기업이심이 좀 더 삶에서 드러나기를 원한다.
Therefore I will hope in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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