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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3:1-18 NIBC, Not I but Christ
우리의 삶은 때로는 답답해 보이고 막막한 순간에 마주치게 된다. 오늘 시인의 모습이 그렇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해서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점이다. 18절에는 그래서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시를 읽고 있는데도 답답한데 실제로 이 상황 속에 있어야만 했고, 이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었을까? 심지어 그는 1-6절에서 이 상황이 그에게 전적으로 닥친 고난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레미야로 볼 경우 그가 얼마나 많은 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가? ‘눈물의 선지자’가 그의 별명 아니었는가? 그런데도 닥친 재앙을 그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예레미야가 정말 무엇을 잘못 했는가?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지 않았는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늘 본문의 저자는 그 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자신이 받고 있음을, 그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자신’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1절).
18절의 그가 고백한 그의 상황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해 외쳤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와 매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잘못 한 것이 없는데도, 묵묵히 이 상황을 받아내고, 감내해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복음인 것이다. 복음이란 누구에게 좋은 소식인가? 그리스도께도 좋은 소식인가? 아니었다. 그 분께는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해야 되는 고난이고 고통이었다. 그럼 누구에게 좋은 소식인가? 바로 우리와 같은 죄인에게다.
오늘 시인의 저자가 자신에게 그 모든 고난을 돌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바라는 ‘기쁜 소식(복음)'을 향한 부족한 표현이다. 물론 이것을 완성시키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오늘 시인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모형을 보여주는 그림자였다.
그렇다면 선교사에게, 리더에게 복음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복음이란 어쩌면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과 같은 고난의 시간이고, 해산의 시간일 것이다. 물론 우리도 복음을 먼저 거져 받지 않았는가? 우리가 그저 예수님의 공로로 용서받았고, 용납받았으니 우리도 예수님이 그 길을 걸어가신 것과 같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억울함을 감내하고, 그들을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억울함을 수없이 만나게 되고, 내가 무슨 낙을 보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수 없이 고민해야 되고, 손해봐야 하며, 때로는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다.
태국 사람들의 속이 보이지 않고, 때로는 우리를 이용하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묵상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이렇게 글로 쓰는 것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쉽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며 자신을 내려놓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싸우면 지는 것이다. 소리 지르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져야만 이기는 싸움에 참여한 이상한 왕을 쫓아가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인 것이다.
오늘도 기도한다. 내 힘으로 살지 않기를,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말이다.
롬 8:5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도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골 3:1-2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복음을 먼저 받은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희생과 자기부인이다. 져야만 이기는 이 싸움에 위의 것을 생각함으로 오늘도 겸손하게 이 길을 걸어가기 원한다.
결국은 NIBC이다. Not I but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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