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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6:32-48 그들이 또?? 그러나 또!!
오늘 본문은 32절은 ‘그들이 또’ 로 시작한다. 성경을 볼 때 마다, 나의 삶을 대할 때 마다 드는 안타까움이다. '나는 또’ 죄를 짓고, ‘나는 또’ 내 삶의 왕관을 차지하려고 한다. 아침마다 묵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도, '또, 또, 또'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랬던게 아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이다. 43절 상반부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진실로 '또, 또, 또' 의 절망적인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늘 건져주신다. 43절 하반부는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또, 또, 또, 또’가 되었다.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이게 우리의 삶이며, 이게 우리 먼지와 같은 인생들의 연약함이다.
우리는 교묘하게 거역한다.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무엇인가 교묘하게 하면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거라는 내 전제를 믿는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 처럼 하나님도 속일 수 있을거라 믿고 행한다. 착각이다.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신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또’의 숫자보다 항상 한 번 더 많은 ‘그러나 또’의 은혜를 주신다. 44절은 그래서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다.
지겹고 지겨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반역과 죄의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이 삶이 그래도 의미있고, 가치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나 또’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편도, 내 삶도 ‘할렐루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이 ‘그러나 또’의 은혜를 구한다. 우리의 죄보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더 크신 은혜가 내 삶에 있음에 감사한다. 나를 보며 좌절되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이 ‘그러나 또’의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간다.
오늘도 또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받아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 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그 은혜로 더 사랑하고, 더 섬기고, 더 돌아보기를 원한다. 복음이 실제가 되는 삶, 내가 용납받은 것과 같이 용납하는 삶, 내 안에 살아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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