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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5:24-45 나의 삶의 주어가 누구인가?
시편기자는 출애굽 사건과 광야 시대를 회상하고 있다. 그런데 24절부터 42절까지의 모든 구절의 주어가 ‘여호와께서’ 혹은 ‘그’로 지칭되고 있다. 한마디로 출애굽도, 광야 시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어서(그러할 능력이 있어서) 출애굽 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출애굽 할 만한 무엇가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인생의 주어가 누군인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종이고, 찬양이다. 오늘 시편 105편의 마지막은 할렐루야로 끝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찬양이 되는 것이다.
오늘 시편을 보면서 나 또한 '나의 삶의 주어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내 삶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나도 ‘하나님께서 하셨다,’ ‘예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라고 이야기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빙자해서 내가 한 것들을 드러내고 싶어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당연하게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임을 드러내려고 할 것인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신실하게 인도해가고 계신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 약속을 하신 분도, 약속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내 삶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려는 조급함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해내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즉 내 존재를 증명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내려 놓는다. 특별히 태국어를 하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씩 조금씩 분명히 늘고 있을텐데 마음은 한없이 조급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이것보다 분명히 잘했을텐데… 그래도 내가 태국 선교사로 한 텀을 마친 사람인데.. 내가 왜 이렇게 말이 안되고, 내가 말하는 것들을 왜 이렇게 이해 못하지? 이러한 마음들 속에는 조급함과 나를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해 보인다.
요즈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가 이러한 마음들 때문에 조급한 것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내 조급함과 나를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들을 내려놓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조금 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자. ‘여호와께서’ 도우실 것이고, ‘여호와께서’ 행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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