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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3:1-15 종교놀이 그만, 삶의 예배 시작
솔로몬은 1절에서 애굽왕 바로의 딸과 혼인을 한다. 나라의 유익을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는 3절에서 보면 여전히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대로 행하는 자였다. 하지만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다.’ 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봐왔다면 산당에서 제사하지 않았으리라. 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봐왔다면 바로의 딸과 결혼하지 않았으리라. 이 둘은 모두 솔로몬의 연약함이었고, 어쩌면 작은 타협이었다. 그가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고 원하는대로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다. 예배에 관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잘 몰랐을 뿐이다. 모르는 것도 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상반부)'. 하지만 이 잘 모르는 행동을 통해서 그는 문제의 씨앗들을 남겼다. 훗날 이 것들은 우상숭배로 이어지게 된다.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끄는 시작점이 되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어떤 예배의 순서나 절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상한 심령의 예배이고, 삶의 예배 (롬12:1-3)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올려 드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져야 한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의 종교놀이를 그만두고 진짜 삶의 예배가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의 종교놀이를 뒤엎으셨다.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셨다. 결국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다.
나의 삶도 종교놀이를 하던 이스라엘의 리더쉽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를 빙자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한 심령의 예배와 삶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수요예배, 주일예배로 퉁 치려고 하는건 아닌지? 물론 이렇게 살아도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신다.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처럼… 솔로몬이 그렇게 살아도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돌보신다. 하지만 다윗이 세웠던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인 이스라엘은 그렇게 조금씩 넘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멸망하게 된다.
삶의 예배가 오늘도 드려지기 원한다. 순간 순간 내 영혼을 깨우기 원한다.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매 순간 좌절하지만 또 다시 일어서기 원한다. 오늘은 지역교회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놀이하고 예배 드리는 마지막 날이다. 더 깊은 삶의 예배, 아이들을 향한 중보, 그들을 향한 섬김이 내 안에서 나타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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