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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6:14-38 허세의 금칠을 벗어 버리자.
성전의 외부를 먼저 짓고, 내부를 지었던 것 같다. 성전의 내부는 너무 아름답게 설계하고, 귀중함을 표시하기 위해 아마도 금칠을 한 것 같다. 금을 여기, 저기 입혔다. 짧게 이야기 하면 솔로몬의 하나님의 경외함의 표현일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부의 자랑? 일 수도 있겠다. 솔로몬이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정확히 분간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경외함의 표현이라 보고 싶다.
아마도 안에서 보면 번쩍 번쩍 했으리라… 금을 입혔으니까… 무엇인가를 입혀 놓으면 겉에 입혀 놓은 것만 보이고 그 속에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성전을 보면서 ‘회칠한 무덤’이란 단어가 떠 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금을 입혀 놓은 듯 한 내 모습 때문이리라.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썩어가는 그러한 삶… 마치 이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도록 번쩍이게 금을 입혀 놓았지만, 결국 이 성전은 하나님이 경외함이 아니라 그들의 욕심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역사를 알기 때문이라.
좋은 의도로 했지만 그 좋은 의도가 오래가지 못하도록 하는 우리의 죄, 가식이 떠올랐다. 오늘 성전에 입히고 있는 금처럼 나도 내 얼굴에 내 삶에 금칠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솔직하게 겸손하게 연약함을 드러내고, 혹은 연약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내가 이렇게 잘 해나가고 있어'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기도를 부탁하기 보다는 조금 더 좋게 보이고, 조금 더 있어 보이게, 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된다. 금칠을 하는 이유는 ‘체면’ 혹은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인데, 한국 사람으로써 나는 내 맘 속에 저 두가지 마음이 모두 가득하다.
얼굴에, 삶에 금칠을 떼버리고 싶다. 그리고 단순하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싶다. 성전보다 크신 그 분 앞에 서기 원한다. 성전보다 더 크신 그 분은 흠모할 모습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다. 나 또한 금딱지, 체면, 가식, 벗어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서는 하루.. 그런 하루가 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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