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12. 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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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5-33 Fear men?? No, fear God!!

듣지 않는 왕 르호보암을 거절하고 왕이 된 여로보암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자신들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 11지파가 예루살렘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갔다가 그 마음도 르호보암에게 갈까봐 ‘스스로 (26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25-27절).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계획하여 금송아지 두 마리를 만들고, 이들이 ‘너희의 신들’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두 외울 성경구절인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라는 구절도 잊어버린다. 이스라엘은 항상 유일신이었는데, ‘신들'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31절에 ‘그가’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이것도 모자라 33절에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을 절기로 정하고 단을 쌓았다. 

괴물이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냈다. 여호와께 듣지 않는 왕 르호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정하여 우상에게 예배하는 여로보암을 만들어냈다. 여로보암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함 (fear, awe)’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함 (fear)’이 여로보암이라는 이단자를 만들어냈다. 그의 관심은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것 뿐이었다. (사실 영어단어에서 fear라는 단어는 경외함으로도 염려함으로도 모두 번역 가능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과 절차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레위기를 통해서 말씀해주셨다. 그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의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이었다. 그런데 그 줄로 재어준 구역을 나가기 시작하니 끝도 없는 우상숭배로 빠지게 된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우리의 두려움을 예배하든지 (결국 나를 예배하는 것-내 자신이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습), 아니면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 다른 신을 예배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여로보암을 보며 마음이 갑갑하다. 나는 무엇을 예배하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두려움, 즉 나인가? 복음은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고, 나의 죄성은 나의 두려움과 나를 예배하라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구역이 때로는 좁다고, 때로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려고 한다. 그 구역의 밖을 오늘 보지 않았는가? 파멸이다. 오늘도 나를 예배하지 않기를 원한다. 오늘도 내 자의로,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과의 교제와 사귐이 어떤 것인지 누릴 수 있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경계한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는 하루가 되자. 생각에서 먼저 시작되는 이 싸움을 오늘은 조금더 이기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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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