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9. 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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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7:1-13 역설의 삶

1. 에스겔서 오늘 본문만 본다면 그저 절망이다. 1-4절에서는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2절) 라고 말하고 있고, 5-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행위대로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행위대로 우리를 벌한다면 우리의 끝은 자명하다. 

2. 행위대로만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이 굳이 수고롭게 천국을 만드시지 않으셔도 되셨을 것이다. 우리의 행위로 누가 하나님께서 정한 의에 도달하며,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자'라고 인정받겠는가?

3. 그리고 이 우리의 행위대로 받는 심판은 모든 무리에게 임한다 (12절).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절망 그 자체이다. 아무런 소망도 아무런 희망도 없다. 에스겔의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들이 아마도 비슷한 절망감을 느꼈을 것 같다. 

4. 절망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아마도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자포자기이다. 어차피 절망이니 될 대로 되라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에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 희망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5.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셨고, 애굽에서 구해주셨고, 가나안 땅을 주셨음을 몸소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의 성취에 대해서 잘 알았기에 아마도 절망감에 몸서리 치지 않았을까? 혹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대어 어떠한 희망을 찾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6.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끝이 있고,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임한다. 우리의 인생도 끝으로, 절망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가 외면해도 부인해도 우리는 늙어가고 있고, 몸의 기력이 쇠하여지고 있는 자들이고, 반드시 있을 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7.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시대에는 희미하게 보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완전한 절망 가운데 완전한 소망을 허락하신 것이다. 내 삶의 절망의 자리에서 새로운 소망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살 수 있게 되었다. 

8. 나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이 나의 삶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나의 어떠함 (who I am)이 아니라 그 분의 어떠함 (who Jesus is) 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두려움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오늘의 삶에서 누리고 싶다. 나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실패하고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이, 그 분의 인격이, 그 분의 성실함이 내 삶을 이끌어가는 그런 삶 말이다. 

9. 그러기에 두렵지만 두렵지 않을 수 있고, 죽지만 죽지 않을 수 있는 역설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 하반절부터 10절까지 

10. 그렇게 역설의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길..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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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