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8:1-18 점점 더 깊어지고 교묘해지는 우상숭배, 그게 바로 나
1. 8장의 시작부터 하나님은 에스겔을 성전 북문으로 이끄신다. 북문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고 (5절), 성전 뜰 문으로 이끄시니 그 곳에는 곤충과 가증한 짐승들을 섬기고 있었다 (10절).
2.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서 담무스(수메르, 바벨론에서 섬기던 농경의 신)를 위해 애곡하는 것을 보게 하셨고 (14절), 마지막으로 성전 안뜰에서는 25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태양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게 하셨다 (16절).
3. 처음 본 성전 밖의 모습이 오히려 더 양반이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성소의 안으로 들어오면 들어올 수록 더 가관이다.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외부에서는 그래도 외부의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좀 약한(?) 우상숭배들이 자행되고 있었다면 더 깊이 들어오면 올 수록 더 깊고 교묘한 우상숭배가 자행되고 있었다.
4. 성전 안뜰의 25명은 24반열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대표인 제사장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성전을 등졌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태양신이 싫어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등진 그들의 상징적 표현이었을까?
5.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은 외식하는 나의 모습같이 보여진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외모, 겉모습, 말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선교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뒀지만 점점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내 마음, 내 생각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가?
6. 은밀하고 교묘하게 죄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또 다른 것도 같이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가 성전 안으로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 떠올랐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셨고 (18절) 나에게도 마찬가지 선고가 내려졌다.
7. 18절에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듣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실 때 하나님은 듣지 아니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음을 입은 것이다.
8. 이 회칠한 무덤 같은 내 삶을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으셨다. 회칠한 무덤 같은 내 삶은 여전하지만 그 의로운 보혈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롭다 선언하셨고, 이제 더 이상 죄인의 삶이 아니라 의인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파괴되고 무너져야 마땅할 성전 (내 몸)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새롭게 세워져 가는 성전이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은혜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이다. 새롭게 세워져 가는 그리스도의 몸…
9. 오늘도 내가 얼마나 교묘하고 악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자인지를 깊이 깨닫자. 그리고 그러한 나를 그리스도께서 거절 당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셨음을 잊지 말고 더 타인에게 너그럽고, 나에게 엄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계속 세워지도록 힘쓰자. 기억하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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