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8:1-9 인자되신 그리스도만이 내 삶의 중심이다
1.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은 온 땅을 창조한 창조주이시고 (3절) 우리는 그에 비하면 참으로 미미한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하나님 다음은 인간이다? 이렇게 이 시편을 이해하는 것이 맞는 해석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2. 과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우주의 크기를 이해하고 (실은 그 엄청난 크기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정말 티끌도 안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커지신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우주의 모든 별들을 지탱하고 계신 분이 결코 우주보다 작을 수 없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노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3. 그런데 하나님의 실제 존재를 우주의 크기와 비교할 수 있을까? 굳이 간접적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인데… 그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에 말도 안되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을 (Nothing)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 (Something)으로 만들어 주셨다. 물론 이렇게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4절에 나오는 ‘인자’라는 단어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4-5절). ‘인자 (the son of man)’라는 단어는 예수께서 자신을 지칭하실 때 부르셨던 용어이고, 다니엘에서 메시아를 예언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5.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 인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메시아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즉 6절 이하에서 나오는 그는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라는 구절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임을 더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
6. 그리스도께서는 이 시편의 구절처럼 잠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 그 이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부활하셨으며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 (엡 1:22). 하늘을 덮는 주의 영광(1절)을 찬양하고 그 다음 찬양하는 대상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바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7.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시어 그의 생기를 부어주셨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가운데 살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자신이 직접 대속제물로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모든 영광과 권세를 받으셨다.이 이름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랴?
8.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니다.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이시다. 아름다운 이름, 찬송 받을 이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이름은 결코 우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실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전해야 할 이름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 이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동일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에 내 삶을 걸어야 한다.
9. 나의 중심성을 벗어나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내 삶에 중심에 두며, 그리스도만이 내 삶의 모든 이유가 되기 원한다. 첫 예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으로 교회를 세워갈 수 있기를 원한다. 오직 그 분만 영광 받으시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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