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9-15 구원과 함께 주어진 사명
1. 앗수르는 멸절당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이다. 12절을 보면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 지라도 반드시 멸절 당하리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멸절당하는 것이다.
2.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특별하고, 구원받을만 해서가 아니었다. 이스라엘도 동일한 죄인이었고, 동일하게 죄를 짓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특별히 세우신 것도, 특별히 구원하신 것도 결국은 15절의 내용과 관계 있다.
3. 구원의 이유는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사실 이스라엘이 들은 기쁜 소식이다. 그들이 더이상 앗수르의 멍에와 결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좋은 소식이다.
4. 하지만 이스라엘이 들은 이 좋은 소식은 자신들을 위한 것 만이 아니었다. 이 소식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백성들을 억압과 불의 죄악에서 또한 구원하시겠다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예표적인 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이 경험한 이 기쁨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결코 자신들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5. 우리는 모두들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아름다운 소식을 기다린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멍에와 결박을 끊으실 것이라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나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피조만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6.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는 사실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명이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7. 선교사이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사명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구원 받은 자로써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8.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시 12제자를 부르셨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복음이 온 땅으로 퍼져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이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그런 하나님은 너희들이나 믿으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9. 하지만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 기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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