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8:16-27 신뢰와 감사가 있으면 다윗의 길로 그렇지 않으면 아하스의 길로
1.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를 굴리고 있다. 21절을 보면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다 가져다줘도 앗수르는 도와주지 않는다.
2. 이 때 회개해야 하는데 이 아하스는 오히려 더 악한 길로 가게 된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고,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며 악한 길로 갈 것인가?
3. 사실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다. 그런데 아하스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돌아서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신을 찾았으나 그 신은 그들을 도울 힘이 없고 오히려 그들을 더 망하게 하였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3절)
4. 힘들다고,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겨 죄의 길로 가는 것은 더더욱 절망으로 가는 길이다. 아하스 왕은 고난이, 어려움이(설령 그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가이드라인임을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고, 심지어 죽어서도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에서 장사하게 되었다 (26절).
5. 세상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너희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의 질문인 것 같다. 이 절망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 "너희들이 믿고 예배하는 그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묻는 것 같다. 그들은 절망의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을 조소하고, 조롱한다. 물론 교회가 잘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 또한 불평하도록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6.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멋대로 사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더욱 더 나아갈 것인가? 아하스의 길을 갈 것인가? 다윗의 길을 갈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어떠한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아하스인가? 다윗인가?
7. 이렇게 물어보면 사실 답은 간단하다. 그 누구도 아하스의 길을 쫓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내 삶이다. 내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가? 다윗의 길인가? 아하스의 길인가? 입만 다윗의 길이고, 삶은, 마음은 아하스의 길은 아닌가? 내 삶을 계속 점검하자. 내 안에 아하스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감사로 마음을 채우자.
8. 불평과 불만이 가득차 있는 상태에서는 내 안에 아하스가 커진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감사하는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미리 감사하는 것이 다윗의 길로 걸어가는 첩경이다. 두려워말자. 하나님은 나의 두려움보다 크시며, 나의 이해보다 크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다윗의 길로 걸어가는 방법이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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