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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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30:1-12 무엇이 내 삶의 결정의 기준인가?

1. 이스라엘의 타락상은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5절 말미를 보면 “이스라엘 하난미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2.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다면 유월절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을텐데 그것을 끄집어낸 히스기야 왕은 그런 면에서 대단한 왕이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악했던 아하스 왕이 아니었는가? 유월절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하고 자랐을텐데 하나님의 유월절을 꺼내어낸 히스기야는 이런 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3. 히스기야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냈고(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들을 도와주실 것을 선포했다 (6절).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조롱하고 비웃든지 (10절), 혹은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든지(11절) 였다. 

4. 마침 요즈음 세대와 비슷한다.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두 가지이다. 조롱하고 비웃든지(겉으로든 속으로든) 아니면 믿든지…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다. 그게 왕의 명령이든 복음이든 우리는 결국은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중에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5. 거절한 사람의 기준은 자신의 생각이었다. 히스기야 왕이 이야기한 유월절 이야기가 너무 판타지나 전설 같았든지.. 자기 생각에 믿지 못하겠다고 느꼈든지.. 근거가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율법이 근거가 아니었다. 유월절을 섬기기로 한 아셀과 므낫세와 스블론 중에서 몇 사람이(11절) 유월절을 섬기기로 한 것은 그 근거가 말씀이었던 것 같다.

6.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라고 11절에 기록하고 있다.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 겸손한 마음은 가지는 순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때할 때이다. 이들이 유월절을 섬기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의 결정이 기준이 될 것인가? 나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7. 내 생각을 나의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내 생각이 어찌 하나님보다 크겠는가? 복음이라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겸손함과 그 분의 구원방법이 어찌 이해가 되겠는가?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자유지만 그 대가는 내가 대신 져줄 수 없다. 결정의 기준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잡아야 한다. 

8. 한낱 인간의 생각으로,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처럼 결정하는 것은 무서운 교만이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오늘 어떠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내 생각인가?

9. 이해되지 않아도, 이성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져도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원하고, 오늘 하루 묵상의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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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