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7. 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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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7:44-53 절망적인 나를 넘어 그리스도께로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만났다. 하지만 그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러한 생각은 자신들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다. 다윗의 의도는 매우 좋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지만 크신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가두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3. 오늘 스데반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논증한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48절)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49절) 하나님은 가장 크신 분이시다. 

4.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이시라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 분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분을 거역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1절)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까지 못 박았다. 

5. 하지만 그것이 비단 이스라엘의 모습만은 아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알기에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고, 스데반은 지금 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6. 우리는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도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또 오늘 본문처럼 스데반과 같은 사람을 통해 우리와 같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 계속 말씀해주고 계신다.

7. 들을 것인가? 듣지 않을 것인가? 목과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 물론 내가 할례를 받겠다고 결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일 따름이다. 하지만 내가 어느정도 절망적인지를 아는 것이 내가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지를 안다면 그제서야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찾게 될 것이다. 

8. 내가 할례 받아야 할 사람임을 모른다면, 내가 성령을 항상 거역한 사람임을 모른다면… 결국은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다. 나의 오늘의 삶이 혹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는 않은가? (100%이겠지만) 혹은 하나님을 내가 정한 모습, 내가 정한 공간으로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9. 오늘도 그래서 내 자신의 악함과 절망을 깨닫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한다. 성령과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자로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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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