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23:1-21 행음자에서 신부로
1. 본문에서는 행음한 두 여인의 비유를 들고 있다. 애굽에서 부터 행음을 한 두 여인이 있는데, 한 어머니의 딸이다 (1절). 두 여인의 이름은 오홀라와 오홀리바이다. 4절을 보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다.
2. 이스라엘은 늘 자신들이 특별히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영적인 특권들을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취급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오홀라도, 오홀리바도 하나님 앞에서 행음을 저질렀다.
3. 5-10절까지는 오홀라의 행음이다. 그들은 앗수르 사람을 사모했고, 앱굽사람과 동침하였다. 11-21절 까지는 오홀리바의 행음이다. 선택받은 민족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있던 이스라엘에 대한 평가는 더욱 더 무섭다.
4.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의 형보다 음욕을 더하여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긴 이스라엘의 타락은 사마리아보다 더 심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과 행음하였다.
5. 성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신부의 비유로 자주 설명한다. 행음도 그러한 관점에서 신랑되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행음을 저지른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호세아서에서 더 명확하게 설명된다.
6. 사마리아도 행음 하였고, 이스라엘도 남편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행음하였다. 이것은 비단 어떤 민족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과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우리 모두의 삶이 이와 같다.
7.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홀라와 오홀리바와 같은 우리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의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행음하고,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던 호세아의 아내 고멜과 같은 자들을 다시 신부로 불러 주신 것이 복음이다.
8. 나는 누구인가? 오홀라요, 오홀리바요, 고멜일 뿐이다. 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내 힘으로는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우리의 신뢰와 의지를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고해질 뿐이며, 행음을 반복할 따름이다. 죄악이 가득한 것이 나의 삶일 뿐이다. 다시 한번 죄인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늘 행음하던 우리를 신부로 불러주신 하나님만 찬양한다. 그리고 그 분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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