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23:22-35 굳이 왜 나를?
1. 하나님께서는 오홀리바(예루살렘)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도구는 그들이 사랑했던 나라들이다. “나는 네가 사랑하다가 싫어하는 자들을 충동하여 그들이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22절 하반부)
2.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잠시 잠깐 만족을 줄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없어서 사라져버릴 우상임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우상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신할 것 같이 다가오지만, 결국은 우리를 망하게 한다.
3.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예언하신다.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항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27절) 35절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4. 우상울 숭배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사랑한 대가는 처참하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 죽음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할 수 없다.
5.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다시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6.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우리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한 죄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역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굳이 왜? 란 질문이 떠오를만큼 복음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예수의 생명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8.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자로 해야 할 것은 이제 우상을 버리고 진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했던 것들. 하나님보다 의지했던 것들이 모두 버리고 하나님만 하나님 되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복음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삶으로의 초대이다. 그러한 풍성한 삶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9. 그 복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원한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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