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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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9-20 너무나도 진실된 요한의 정체성

1. 9절에서 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소개가 너무 멋있다. 뒷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요한의 사명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소개가 너무 마음을 끌어 당긴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9절 상반부)

2. 그는 자신을 높게 취급하지 않았다. 그저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의 형제일 뿐이었다. 선교지에 있다 보면 ‘내가 누군데?’ 라는 말을 하시는 분도 있고, 말을 하진 않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도 있다. 태국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도 그들에게 목사나 선교사가 아니라 형제이길 원한다.

3. 그 다음 소개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동참하는 것은 뭔가 있어 보이고, 좋아보이고, 권력과 부를 움켜쥐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동참하는 것은 오히려 환난과 참음이었고, 예수의 나라였다. 

4. 요한이 동참하고 있는 것은 사실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우리가 동참해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 첫 마음은 어디가고 내가 동참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으로 인한 떡고물에 점점 더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5.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야기 하면서도 더 많은 성도, 더 많은 성과 등의 크리스텐덤적 (기독교 제국주의)인 사고를 계속 하고 있다. 주님의 환난과 참음을 이야기 하지만 환난보다는 영광을 생각하고,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오래참고 싶지 않다. 

6. 그런데 요한은 밧모섬에 갖힌 상태에서 편지를 쓰면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의 그 정체성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 요한의 자기 정체성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나도 어딘가 가면 그렇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7.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형제인가? 그리스도의 환난과 참음과 나라에 동참하는 자인가?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히 그렇고, 어떤 부분에서는 또 분명히 아니다. 나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세울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8. 잊지 말자. 나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이고, 모두의 형제일 뿐이다. 높아지려고 하지말고, 잘나가려고 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내자. 바쁜 사역과 사역의 준비 속에서도 나의 정체성을 잊지 말자. 

9. 오늘도 샬롬

*내일 랏끄라방 감리교 신학교에서 선교학 2번째 강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선교에 대해서 잘 나눌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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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