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2-17 사소한 타협은 사소하지 않다.
1.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버가모 교회는 황제의 다스림 가운데 살고 있었다. 13절을 보면 이를 ‘사단의 권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13절).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고, 주를 향해 자신의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2. 하지만 그들에게는 니골라 당의 교훈이 있었는데, 이 니골라 당의 교훈은 바로 세상의 것들과 신앙의 순수성을 타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죽음까지도 감수하면서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이었는데 무엇을 타협한 것일까?
3. 이들이 타협했던 것은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이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그들이었는데, 그들이 타협한 내용은 아주 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4. 나의 삶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은 쉬이 나타난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지는 부분에서는 타협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지만 사소한 문제에서는 이정도 쯤이야 하고 넘어갈 때가 있다.
5. 그런데 그러한 작은 타협의 시작은 결국 균열을 만들어내어 믿음을 넘어지게 만들고, 신앙의 순수성을 넘어지게 하고, 결국은 더 큰 것까지 타협하도록 만든다.
6.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게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7. 내가 지금 타협하고 있는 작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방치하고 있는 깨진 작은 유리창 하나는 무엇인가? 아마도 ‘바쁨'인 것 같다. 그 바쁨에 눌리면 큐티도 말씀읽기도 뒤로 밀린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도 후순위가 된다. 강의준비, 설교준비, 사역 등등에 밀려 더 중요한 하나님과 보내야 하는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8. 만약 ‘주일을 빠져야 한다’ 라는 큰 일(?)이라면 버가모 교회 사람들처럼 목숨을 걸고 지킬 것 같지만 바쁨이라는 작은 유혹(?)에는 생명을 걸고 싸우지 못하고 은근슬쩍 타협하며 우선순위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타협하다보면 순식간이다.
9.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지 않기 원한다. 작은 일에 더 생명을 걸고 우선순위를 지키기 원한다. 예전에 정갑신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설교 준비를 하다보면 설교를 더 잘하고 싶어서 시간 확보를 위해 큐티를 빼먹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하시길 설교 준비를 위해 절대 큐티를 빼먹지 않기로 하셨고 지금도 지키고 계시다고 한다. 작은 일일 수록 더 타협하지 말자. 이러한 결정이 내 삶에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몇 일간 카톡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큐티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답답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저와 연락을 해야 하는 다른 분들이었습니다. 기도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멈춰지면 정말로 답답한 사람은 나일까? 하나님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히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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