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6:30-44 불쌍히 여기사…
1.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보실 때 우리 사람들이 가진 기준으로 보지 않으셨다.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재력이 있는지,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역에 필요하신지를 보시지 않았다.
2.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들의 영적 상태였고, 이는 34절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 같다고 생각하셨다. 그들을 영적, 육적으로 돌볼 목자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가르치셨다. 영적인 필요를 먼저 채우셨다. 그리고 35-43절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다. 육적인 필요도 채워주셨다.
4. 그러한 영적, 육적인 돌봄의 시작은 그들을 그 존재 자체로 보는 것, 사람을 필요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대가 사람들을 보는 눈과는 매우 다른 눈이었다. 이 시대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외모나 가진 것, 능력으로 평가한다.
5.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 (외모, 능력, 소유 등)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사람들을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가? 이 시대의 눈인가? 예수님의 눈인가?
6.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떨 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부터 그런 눈으로 타자들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타자들을 그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 안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7. 더 이상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창조하셨고, 그를 위하여 가장 귀하신 그 분을 아낌없이 주셨다는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볼 때에 그때부터 바른 관계가,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8. 아이들을 바라볼 때, 내 말을 잘 듣고 안 듣고가 그 아이들을 판단하는 어떤 기준이 되지 않기 원한다. 이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게 주셨을 때, 또 병원에서 처음 만났던 날 얼마나 기뻤었던가?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지 않았던가? 다시 그 눈과 마음을 회복하기 원한다.
9. 비단 아이들 뿐이겠는가? 태국 사람들을 볼 때에도 그러한 눈을 가지기 원한다. 교회에 잘 나오고 열심히 섬기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사랑받은 자임을 전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원한다. 예수님처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 수쿰빛 언약교회 성도들을 바라보기 원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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