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2. 2. 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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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8:27-9:1 나의 얄팍함을 안고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1. 예수님의 진리는 언제나 역설의 진리이다. 하지만 그 역설은 언제나 사실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2.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무엇을 따라 가려면, 혹은 먼 길을 나서려면 최대한 몸이 가벼워야 한다. 그리고 따라가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3. 자기를 부인하느라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모를 것 같고, 그 십자가의 무게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기 더 어렵게 만들텐데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러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 과정 자체, 내 존재가 변화되는 그 과정 자체가 예수를 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4. 즉,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적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그의 존재가 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35절에 나오는 것 처럼 살려고 하면 죽는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사는 것이다. 

5. 나의 존재가 죽으면 (Not i)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면서 (but Christ) 나의 전 존재가 변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죽으려고 하지 않으면 내 혈기, 내 기질, 내 안에 악함이 계속 살아서 나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6.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신다. 나의 존재는 어떠한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믿은지 거의 30년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존재는 변했는가? 그래서 나는 예수의 뒤를 쫓고 있는가? 그 질문에 무엇인가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7. 왜냐하면 여전히 나는 살려고 하고, 여전히 나를 내세우려고 하고, 여전히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드러나는 방법, 내가 올라가는 방법, 내가 사는 방법을 늘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8. 어떻게 나의 이렇게 얄팍한 존재가 변화될 수 있는가? 아이러니는 계속 이어진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죽지 못하면서도 내가 예수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나의 존재는 변하게 된다. 여전히 살려고 하고, 여전히 그 십자가를 밀어내면서도 예수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나의 존재가 변화를 받게 된다. 나의 존재의 변화는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와 예수와의 관계의 거리에 달려 있다. 나의 연약함을 안고 그 분께 가까이 머물 때, 그 분께 가까이 다가갈 때에만 나의 존재는 변하게 된다. 

9. 더욱 더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더욱 더 그 분을 닮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의 얄팍함을 안고 예수께 또 나아간다.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마지막에는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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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