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6:1-16 부모의 등이 아니라 복음으로
1.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게 아니라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였다. 즉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보다도 더 효과가 있는 양육방법은 부모의 삶이라는 것이다.
2.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이삭의 행동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한 그대로 행한다. 흉년이 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버리고 다른 땅으로 가서 살고 (1절), 그 땅에서 아내로 인해 오해를 받아 죽기 싫기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하게 된다 (6-11절).
3. 물론 이 일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여준 삶의 모습들이 이삭에게 영향을 미쳐 지금 이삭은 그 아버지가 한 그대로 행하고 있다.
4. 약속의 땅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흉년 중에 그들을 도우실 수 없었겠는가? 온 땅과 하늘의 창조자이신 주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나와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실 수 없었겠는가? 아브라함과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도 끝이 난다.
5. 그런 면에서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 없음’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등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나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원하면서도 나도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지는 않는가? 입으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이야기 하면서 일상에 영향을 잘 줄 수 없는 그런 연약한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6. 아브라함도 이삭도 연약했다. 그들의 믿음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2절)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도 복을 주신다.
7. 그것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이고,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신다. 내 등을, 내 삶을 돌아보면 도저히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설명하기 힘든 삶이다. 부족함과 연약함이 점철되어 있는 삶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8.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늘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우리의 믿음이 뛰어나고 삶이 뛰어나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사랑과 은혜가 연약한 나와 내 자녀들에게 임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편 기자의 말 처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우리가 무엇이길래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가?
9. 이 은혜와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내가 어쩔 수 없고, 절망적인 사람임을 깨닫고, 그러한 절망적인 내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이 이 복음이 그들의 삶에서 진심으로 믿어지길 기도한다.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깊이 보여주신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 깨닫기 원한다. 물론 나의 삶도 복음으로 인해 다시 새롭게 되어지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생각(Thinking) > Medit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 27:30-40 ‘믿음 없음'이 모든 죄와 연약함을 일으킨다 (0) | 2022.03.22 |
---|---|
창 27:15-29 두려움이 아니라 약속이다 (0) | 2022.03.21 |
창 25:1-18 복이 흘러가려면.. (0) | 2022.03.16 |
창 24:50-67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더 신뢰하기 (0) | 2022.03.15 |
창 24:28-49 환대를 베푸는 삶 (0) | 2022.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