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4:1-13 복음으로 용서하기
1. 요셉은 마지막으로 형제들을 시험한다. 그의 시험은 정말로 잔인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형제들이 정말로 변했는지를 알려면 이 방법 말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셉의 이러한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2. 그는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가방 안에 넣어두고, 베냐민을 잡아둠으로 인해서 형제들의 우애와 사랑을 테스트 하려고 한다. 요셉이 당했던 경험 속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 같다. 나를 배신하여 내 일생의 반을 감옥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한 사람들이었다.
3.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에게 해를 가한 사람을 쉬이 용서하지 못한다. 아니 용서하기 어렵다. 요셉은 용서의 자리까지 이미 갔지만 형제들이 정말 변했는지를 테스트 해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용서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도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4. 요셉의 이러한 인간적인 행동이 매우 이해가 된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형제들이 원망스러웠겠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하심이 있었더라도 그의 마음의 생채기는 쉬이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5.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매우 명료하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고전 3:13 우리의 마음에 생채기가 있을지언정 우리 마음에 아픔과 힘듦이 있더라도 우리는 결국 용서해야만 한다.
6. 그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인간이기 때문도, 우리가 율법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다. 나 또한 용서받은 가해자이며, 그 또한 용서받은 피해자임을 이해할 때에라야 비로서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7. 요셉의 시험은 이미 형제들을 용서를 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시험의 결과를 통해서 형제들을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요셉은 자신의 힘든 시간동안 하나님을 정말 만났다. 모든 이가 그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보았다.
8. 하나님과 함께 함이, 그 속에서 자신이 용서받은 피해자이며, 용서받은 가해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오늘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를 용서받은 피해자이며, 또한 용서받은 가해자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가?
9. 사도바울이 고전 3:13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복음의 바른 이해만이 용서할 수 있도록 하여준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을 알아갈 때 우리는 비로서 용서할 수 있다. 나도 복음 안에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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