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4:1-11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면…
1. 율법은 때가 차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기 전 까지만 유효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율법은 그리스도에 비하면 초등학문 수준이다 (3절).
2. 그리스도의 깊이와 넓이와 아름다움은 율법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깊고 넓고 광대하다. 구구단을 외우며 문제를 푸는 초등학교 수학과 비교해서 미적분을 비롯한 고등수학은 얼마나 더 깊이있고, 어려운가?
3.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구구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구구단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고등 수학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도, 구구단만 옳고, 구구단만 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4. 구구단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종노릇 하게 한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하지만 고등수학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게 만든다. “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6절).
5. 우리가 율법과 그리스도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너무나도 선명하다. 우리를 종으로 만드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 ‘아빠’로 부를 수 있게 한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6. 초등학문은 낮은 수준의 것이다. 초등학문은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지위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초등학문을 갈망하고, 초등학문에 속한 무엇들을 얻기 원한다.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7. 처음에 맥이란 컴퓨터를 접했을 때 아이폰을 접했을 때 다른 컴퓨터와 핸드폰들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들이 있었다. 외관 디자인이 일단 너무 이뻤고, 인터페이스와 아이콘들도 너무 이뻤다. 그래서 한동안 맥 앓이를 했었다. 정말 다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면 아마도 동일한 증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다른 것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8. 문제는 아직 그리스도의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만 내가 편한 것, 내가 좋은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안도감을 준다. 내가 이만큼 애쓰고, 내가 이만큼 기여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을 준다. 우리의 구원에도 내가 기여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율법이 구원에 있어서 편한 느낌을 줄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니다. 구원은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의 결과이고,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단 한 부분도 기여할 수 없다.
9. 이번 한 주도 은혜로 살아가기 원한다. 내가 나의 구원에 무엇인가를 더하기 위해 애쓰고,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뭔가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 아름다움을 보았기에 압도되고, 그 아름다움을 보았기에 다른 모든 것이 사도바울의 표현처럼 배설물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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