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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2:1-10 복음과 복음의 결과

1. 갈라디아 교회에 발생한 문제는 거짓 형제들이 거짓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이 불완전한 반쪽자리 복음이라고 말하며 할례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3-4절). 

2. 할례는 결국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을 강조하는 것은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믿음은 구원의 반쪽일 뿐이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있어야 우리의 구원이 온전하다고 가르친다. 

3. 팀 켈러는 이러한 것을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했다고 말한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분명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복음의 결과는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하면 구원도 믿음 + 선행으로 받는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4. 복음의 결과는 우리가 복음을 가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과정일 뿐이다.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내 삶은 이전과 다르게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지, 선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5. 우리의 구원에 복음 외에 어떤 것이든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은 다 다른 복음이다. 하지만 진짜 복음을 가진 사람의 삶은 행위를 강조하는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더라도 반드시 선한 삶이어야만 한다. 

6. 지금 교회가 겪는 어려움들은 바로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한 신자들 때문이다.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음)의 교리도 오해되어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야 하는데도 구원받았기 때문에 대충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 행위는 구원과 관계없기 때문에 대충 살고, 필요하면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와 교인들의 삶이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다를 것을 기대했지만, 우리의 삶이 그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믿고 천국가라’는 말이 그저 허공에 떠도는 구호가 되는 것일 것이다.

8.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별명은 ‘그리스도인’이었고, 이것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경멸의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였다. 전염병이 창궐하였을 때, 아무도 병든 자들을 돌보지 않았을 때에도 (심지어 가족 조차도) 그리스도인들은 병든 자들 돌보았다. 예수를 믿으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시대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숫자로 증가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보여준 복음과 복음의 결과가 다른 이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9. 나는 복음을 따르고, 복음의 결과가 삶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나의 삶은 진실로 매력적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는가? 나의 말과 행동과 삶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복음이, 복음의 결과가 혼동되지 않고 그것이 내 삶에 올곧이 나타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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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