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2:1-11 사랑의 법
1. 전도서의 큐티는 어렵다. 왜냐하면 계속 헛되다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헛된 것의 출처가 나온다. 그래서 그나마 큐티가 수월했다.
2. 10절이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 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3. 전도자가 무엇을 행하는 기준은 바로 자신의 눈과 마음이 원하는 것에 있었다. 기준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기준은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선한 것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우리 눈과 마음이라니…
4. 그러니 그가 느끼는 것은 허무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11절)
5. 우리 눈과 마음에 기준을 두고, 눈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때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무 뿐이다. 우리의 눈이 원하는 것, 마음이 원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거기서 결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6. 허무함에서 빠져 나오려면 우리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께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께 우리의 기준을 둬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다.
7. 여전히 내가 눈이 원하는 것,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서 허무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기준을 믿을 수 없는 것들에 두면서 그 믿을 수 없는 기준을 따라 행하면서 힘들어 하고 있진 않은가?
8. 하나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다. 눈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법이 내 삶의 기준이어야만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인가? 지금 섬기고, 일하고, 공부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 눈과 내 마음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인가? 사랑의 법이 기준이 된다면 내 삶의 허무감을 넘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9. 오늘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수쿰빛 언약교회와 신학교 강의, 연구소 사역이 과연 태국인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인가? 사랑의 법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오직 사랑만이 남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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