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5:10-22 겸손의 길, 사랑의 길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궤 혹은 언약궤를 만들라고 말씀하신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상징한다.
2. 10절부터 21절까지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무척이나 디테일하신 분이시다. 그냥 너 마음대로 만들어봐 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심이 많으시다
3. 다 만들어진 언약궤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이다. 그런데 왜 굳이 전능하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한 장소를 만들어 그 위에 임재하시겠다고 하셨을까?
4.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2절). 굳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출애굽이라는 상황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5.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과의 다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화려한 신들, 화려한 성전들을 그동안 많이 봐 왔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보이는 신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갔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6.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애굽의 신들과는 다른 분이다. 따라서 이 언약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만듦으로써 보이는 신에 대해서만 이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 온 세상에 충만하시고,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해하시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우주에서 먼지도 안되는 지구에서 그것도 작은 궤 위로 한정하신 것이다.
8.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으셨다. 크신 하나님께서 굳이 왜 자신을 그 작은 궤 위로 가두시는가? 사랑 때문이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는가? 우리를 향한 겸손하신 그 분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겸손의 길을 택하셨고, 우리를 살리는 길을 택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궤는 같은 의미이다.
9. 그 분이 택하신 겸손의 길, 사랑의 길을 나는 오늘 택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있는게 아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겸손의 길, 사랑의 길을 걷는 내가 되고 싶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역에서 겸손과 사랑의 길을 택하길 원한다. 손해보더라도 낮아지더라도 그 좁은 길을 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https://www.youtube.com/watch?v=tOAh8OHFx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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