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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14-25 내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솔로몬에게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먼저 이야기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았다. 이방여자들을 보낸다던가, 산당을 허문다던가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죄를 쌓아가고 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순간에 그러지 못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분임을 몰랐을리 없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죄를 계속해서 쌓아가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는 오늘 본문에서 대적들이 일어난다.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셨고 (14절), 23절에는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열방에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 친히 선택한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들의 회개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는 대적들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평안과 평화는 우리가 가진 힘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지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솔로몬은 여전히 강하고, 여전히 부유하였지만 그의 평화는 그리 오래갈 수 없는 평화였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깨어짐은 단순한 하나님과의 평화와 평안만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어려움을 가져오게 된다. 사방에서 대적들이 일어나고, 그의 나라는 이제 위태롭게 된다.
결국 여호와께 돌아가야만 한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매우 많은 순간 하나님과의 깨뜨려진 관계가 보이기 보다는 대적들이 먼저 보인다. 대적들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결국 대적들과의 관계도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이다. 솔로몬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을 걸었어야만 했다.
사역이든, 일이든, 가정이든, 관계이든 어느 곳에나 대적들은 있다. 그 대적들은 늘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대적들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한다. 먼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그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이키자. 대적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이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놓치게 되면 대적들만 보이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대적들로 인해 그 시선을 다시 하나님으로 돌이키는게 쉽지 않아진다. 내 시선을 하나님 앞으로 고정시키고, 이 모든 일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자.
내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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