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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1:12-22 죄야 나랑 같이 죽자
본문의 화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꺼내어 회개하고 있다. 18절에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20절에는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회개하고 있는 것 같은 화자는 21절에서 갑자기 ‘그러나’로 시작되는 탄원을 한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22절에는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라고 탄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같이 죽자는 이야기다. 나도 죄인이라서 내가 이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니, 저 놈들도 죄인이니 저 놈들도 나와 같이 벌을 주소서 라는 탄원이다.
그들의 죄나 나의 죄나 동일하다. 나의 죄나 너의 죄나 동일하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 맞다. 우리는 이 애가의 화자와 같이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나도 죄인, 쟤들도 죄인, 우리 모두 죄인.. 그래서 우리는 그 죄로 인한 고통과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나도, 너도, 우리도 죄인이 이 땅에 그 죄를 자신에게 돌리는 한 분이 나타나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지고 죽으셨다. 눅 23:24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나도, 너도, 우리도 죄인인 곳에 오셔서 우리 모두가 죽어야 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죄가 되신 것이다.
내 삶에 소망이 없다. 죄짓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죄짓는 공장’같은 느낌이다. 잠시도 죄 없는 상태로 살 수 없다. 계속해서 죄를 더할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 때문이다. 나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 이름을 믿을 때 나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삶을 주신 그 분 때문에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애가의 저자와 같이 내 인생도 끝장이 나야 마땅하다. 망해야 마땅하고, 죽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나를 살게해주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께서 계시니, 오늘도 다시 힘을 낸다. 죄와 같이 나도 죽기 원한다.
죄와 같이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만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말은 쉬운데, 죽기가 쉽지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안죽고 싶다. 그래도 죽어야 한다. 그래도 내 자아를 죽여야 한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발견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이 무능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내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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