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8:25-29 정체성과 사명이 결정하는 삶으로..
1. 사람은 끼리 끼리 모이는 것 같다. 끼리 끼리라고 말하면 안 좋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비슷한 사람들,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다고 표현하는게 더 적절하겠다.
2. 친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공통점이든, 혹은 관심사이든 뭐든… 아하시야는 엄마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였고 (26절), 그러한 배경에서 자란 그는 결국 또한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된다 (27절). 가풍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고 그들의 공통점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27절).
3. 자신들이 악인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거나 생각도 안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던 일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이었고, 악한 일을 한 것 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람들의 악함을 만나며 그 악함은 더 커져가고 있었다.
4. 그런데 문제는 아합이 아니었다. 아하시아가 문제였다. 그는 유다의 왕이었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메시아의 족보에 기록될 사람이었는데, 그가 아합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5. 아하시아 왕은 아합과 공통점을 가지며 어울려야 할 사람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으로 유다를 통치해야 할 왕이었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는 순간 마음대로 살게 된다. 이스라엘 왕의 딸이었던 엄마가 그에게 그러한 정체성을 심어주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부모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가?
6.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역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용하실지에 대해 놓치게 되면 마음대로 살게 된다. 욕망을 따라 살게 되고, 본능을 따라 살게 된다. 하나님의 빅픽쳐를 이해하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누구인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 수 있다.
7. 이 정체성과 사명을 잃으면 욕망이 삶을 지배하는 괴물이 탄생한다. 그리고 정체성과 사명을 잃은 그 괴물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바로 내가 될 수 도 있다.
8. 다시 한번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욕망이 나를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악함이 내 옆에 악함과 만나서 더 큰 악을 구축하는 삶이 아니라 사명과 사명이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한 정체성이 다른 이의 정체성과 만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9. 나는 누구인가? 왜 지금 이 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오늘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보내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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