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4.05.20 잠 10:1-17 절대 선,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
  2. 2024.05.14 호 13:1-16 Stay hungry
  3. 2024.05.03 호 2:14-3:5 ‘내가' 하겠다 1
생각(Thinking)/Meditation2024. 5. 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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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0:1-17 절대 선,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

1. 솔로몬의 잠언이다. 솔로몬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다른 타입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것을 1절에서는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로 표현한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1절).

2. 이 지혜로운 아들은 본문을 살펴보면 계속 의인, 손이 부지런한 자, 마음이 지혜로운 자, 바른 길로 행하는 자, 생명의 샘, 명철한 자, 훈계를 지키는 자 등으로 절이 바뀌면서 계속 다른 표현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미련한 아들은 악인,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 추수 때에 자는 자, 입이 미련한 자, 독, 미움, 징계를 버리는 자 등으로 마찬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3. 결국 지혜로운 아들은 바른 길로 행하는 자이다. 지혜로운 아들은 길이 바르다는 것을 자신이 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바른 길에 대해서 아비에게, 어미에게,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듣고 그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아들인 것이다. 

4.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미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여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 교육을 받은 나로써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5. 그러나 바른 것에 대해 각자 기준을 정하는 것은 이제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내가 그 바름을 정할 수 있는 지혜도,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따라서 행하다 보면 나의 이기심을 만나게 되고, 자기 중심성에 빠지며, 언제나 나를 남보다 사랑함을 발견하게 된다. 

6. 그러기에 우리의 바름의 기준은 나에게서 나와서는 안된다. 홀로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이 없다면 손이 게으른 것이, 추수 때에 자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독을 머금은 말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내가 괜찮다는데, 내가 옳다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로운 아들이 되려면, 바른 인생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말씀에서 그 ‘바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7. 특별한 일이 없다면 누구나 지혜로운 아들이 되고 싶으 럯이고, 바른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고 만다. 다 상대적이라면 그것이 죄라고 무슨 기준과 근거로 말하겠는가? 하나님이 없다면 이 모든 우주는 약육강식이 당연시 여기게 되고, 고아와 과부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살아내야 하며, 약자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곳이 되어 버리고 만다.

8. 그러기에 절대 선,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 바른 길로 걸어갈 수 없다. 지혜로운 자, 명철한 자가 되고 싶다면 그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그 하나님의 진리를 더 굳게 붙들어야 한다. 훈계를 지키는 자가 되려면 그 훈계를 진리로 믿어야 한다.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9.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리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나는 참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가? 지혜로운 아들로 살아가길 원한다. 바른 길로 행하는 아들이 되기 원한다. 사랑하며, 생명을 살리고, 고아와 과부를 돕는 자가 되기 원한다. 어떠한 말씀도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 원한다. 부족하여도, 연약하여도 순종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5월 기도편지를 보내드린 것 처럼 저희 가정은 6월 12일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7월 중순부터 안식년을 시작하게 됩니다. 케어그룹과 성도들 심방, 1:1 성경공부 등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해야 하는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마지막 설교도 했고, 목양팀과의 마지막 식사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임들을 통해 저희 가정의 3기 사역을 마무리를 하면서 형제, 자매들의 피드백을 듣게 되는데, 정말로 많은 감사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태국의 형제, 자매들과 태국에서 팀과 교회로 사역을 하였지만 이 모든 시간동안 함께 기도하며 동역해주셨던 한국의 팀 멤버인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런 모습으로 섬기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저희 가정의 안식년과 다음 사역 준비를 위해서도 계속 기도와 동역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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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4. 5.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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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3:1-16 Stay hungry

 
  1. 에브라임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의 범죄는 자신을 높이는 범죄였다. 1절 중반부를 보면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여 망하였거늘" 에브라임은 자신을 높였다. 자신을 높인다는 것은 비교하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지려고 했다는 것이다. 
  2.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 하더라도, 나중에는 결국 비교를 통해 내가 높아지든지, 아님 그(녀)가 높아지든지 하여 마음이 높아지거나 혹은 어려워진다. 비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 자신을 내 모습 이대로 못 보게 만드는 큰 죄이다. 

  3. 에브라임은 비교를 하여 높아진 이후에는 이제 자신의 우상을 만든다.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2절 전반부) 자신이 비교를 통해 우위를 점하고, 자신이 높아지고 나서는 이제 그러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 줄 우상이 필요해진 것이다. 올라갔기 때문에 떨어질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올라간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상은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4. 비교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우상을 만들어낸다. 비교와 우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4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는 그제서야 비교를 멈추고, 우상을 버리게 된다. 

  5.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들을 운행하시는 분을 만날 때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심을 깨닫게 될 때에야 비교를 멈추게 된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하게 될 때에만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그 분의 아름다우심으로 인해 우상들을 미워할 수 있게 된다.

  6. 이 모든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다 내가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뿐이겠는가? 나는 어떠한가? 내가 똑똑하고 잘났다고 믿기 때문에(실제와 다르더라도)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그래서 일이 잘 되면 내가 잘나서, 내가 애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일이 잘 안풀리면 하나님을 원망한다. 잘되면 내 덕, 안되면 하나님 원망을 한다. 

  7.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신다.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6절) 배가 부름이 나를 망하게 한다. 영적인, 육적인 배부름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배를 의지하게 만든다. 나의 배를 의지함이 나를 교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교만함은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8. 하나님의 에브라임을 향한 이 진단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혹시 지금 나는 배가 부르지 않은가? 영적, 육적으로 너무 배부르게 먹고 있진 않은가? 배가 불러서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배부름이 영적인 나태와 교만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가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내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특별한 때에만 무슨 일이 있을 때에만 할 것이 아니라 상시점검이 필요하다. 특히나 사역자로서 나를 더 엄격해 보아야 한다. 아내가 가끔 지적하는대로 나는 나에게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 엄할 때가 있다. 반대가 되어야 한다. 상시점검을 통해 나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9.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Stay hungry” 지금 이 순간에게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좀 더 절제하고, 좀 더 점검하자.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서자. 그게 영과 육이 사는 길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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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2:14-3:5 ‘내가' 하겠다

1. 호세아 2장의 후반부는 고멜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즉 신실한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이세벨에게로 달려가 음란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2. 2:14부터 23절까지의 모든 주어는 ‘내가'이다. 너희들이 나(하나님)를 버리더라도, 다른 신들을 찾아갈지라도, 너희들이 얼마나 망가지고 얼마나 엉망이 되더라도 ‘내가' 이 모든 관계와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다. 

3. 16-17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9-20절이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4. 어느 구절도 너희가 착하게 살면,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저희가 무엇 무엇을 하면 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 모든 구절이 증거하는 것은 너희의 악함을, 너희의 연약함을, 너희의 모든 죄악을 ‘내가’, ‘나 여호와가' 회복시킬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5.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고,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이다. 내가 어떤 존재였는가? 우리는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이익과 내 환경을 따라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이다. 내가 얼마나 엉망인 존재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고 있지 않은가?

6.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그 분의 주권적인 은혜로 사랑하셨다.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면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셨다. 그저 용서하셨다. 그저 구원하셨다. 그렇게 내가 한 것 같이 주장하는 나의 믿음조차도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성경이 아니고서는 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겠는가?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으니”

7. 호세아서에서의 불 붙는 사랑, 그 뜨거운 사랑이 나를 향한 것이다. 나는 언제나 주님을 거절하고, 주님을 내 입맛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내가 고멜과 다르다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도 ‘내가' 사랑하겠다,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강권적인 사랑으로, 그 강권적인 은혜로 붙들고 계신다. 그리고 ‘나는 나’ 이신 그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이 땅으로 오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8. 나의 망가짐과 나의 절망을 본다. 악하고 음란하며 거짓되고 사랑이 없는 나를 본다. 또한 그런 나를 여전히 ‘내가' 사랑하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본다. 나를 보고 있을 땐 절망 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에는 소망이 생긴다. 왜냐하면 그 소망의 원천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대로 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준비하면서 1년간 남겨질 성도들과 수쿰빛 언약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이제는 소망이 생긴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 이 교회에 역사하시는 분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절망적인 존재를 사용하셔서 진주를 만드시는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수쿰빛 언약교회를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신 ‘내'교회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뭐 그리 한게 있는가? 다 주님께서 하셨지…

9. 안식년 동안 우리 가정을 위해 하실 놀라운 일들을 소망해보게 된다. 또 수쿰빛 언약교회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소망해보게 된다. 아직은 보이지 않고,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찾아올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께서 ‘내가' 하시겠다고 하시니 염려하지 말고 소망하자. 

10. 오늘도 샬롬 

*저희 가정의 안식년과 수쿰빛 언약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도록'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늘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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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