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4. 8. 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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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2:13-20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가 되자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울이 전한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13절 전반부). 

2. 어쩌면 설교의 완성은 설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설교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듣는 자의 마음이 닫혀 있고, 어디 한 번 나를 설득해봐!! 라는 표정으로 설교자를 쳐다보면서 설교를 평가만 하고 있다면 과연 그 설교에서 능력이 나타나겠는가? 바울의 감사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에게 들은 말씀을 바울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3. 그랬더니 그 결과는 말씀이 역사하게 된다.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3절 하반부) 말씀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영성과 능력있는 설교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 

4. 내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혹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즉 말씀을 듣고 나서 내가 순종이나 불순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내 마음에 드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은 그저 무시해도 괜찮은 말씀으로 나 스스로가 결정하진 않는가?

5. 나는 목사로, 선교사로 때로는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듣기도 한다. 그 때 마다 나는 누구의 말씀으로 전하고, 누구의 말씀으로 받는가? 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누가 설교하든지, 어떤 말씀을 전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가? 

6.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믿음의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어떠한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떠한 믿음으로 말씀을 듣고 전하는가?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있기에 내 안에 그 말씀이 역사하고 있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또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여 잘 전달하고 있는가? 

7. 그러한 성도들은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의 면류관이 된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수쿰빛 언약교회 성도들이, 나의 믿음의 자녀들이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되어 나의 영광이고 기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고 기쁨이 되길를 원한다. 

8.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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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4. 8. 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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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2:1-12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삶

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칭찬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4절 하반부).

2. 바울은 정말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간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서의 내려졌던 결정이나 방향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을 의식했고, 그 분이 기뻐하시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평가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6절)

3. 하나님이 기쁘시면 충분했기에 그는 자신이 충분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도로서의 권위도 주장하지 않았다 (7절).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주기를 기뻐하였다 (8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 됨이라"

4.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의 인정만이 중요한 바울의 삶은 요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가 오늘 뭔가 좀 더 잘했다고 해서 혹은 내일 좀 못한다고 해서 휙휙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 오늘은 환호하다가도 잠시 잠깐 후에 비판하고 비난하는게 사람이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5. 그러니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또 사역을 하면서 누구를 의식하고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지는 나의 삶을 요동하게도 할 수 있고, 혹은 깊은 바다 처럼 고요하게도 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누구를 의식하며 또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살아가고 있는가? 

6. 안식년을 보내며 수쿰빛 언약교회와 나의 사역들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교회를 함께 개척하고 섬겼던 것인가? 나의 선교는 누구를 의식하면서 하고 있었던가? 혹시 태국의 영혼들을 너무 의식하였거나 혹은 한국에 있는 후원하는 교회들이나 후원자들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를 생각해보게 된다. 

7. 또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오늘 나는 누구를 의식하고,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있는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나의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마음 가는대로, 내 감정이 느끼는대로 분노하거나 분을 쏟아내고는 있지 않은가? 바울이 하나님만 의식하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섬길 때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2절)

8.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하기 위해 바울은 정말 자신이 먼저 합당하게 살았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0절) 그들을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의식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자에게는 굳이 하나님을 위해 합당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없다. 보이는데서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는 보이지 않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증인이고 또 우리 하나님께서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9. 나는 누구를 의식하며 누구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가? 만약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대충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좀 더 치열하게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며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가정의 삶에서 그리고 돌아갈 태국에서의 삶에서 모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식하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자로 살아가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 조금도 나태하거나 흐트러진 삶의 모습이 아니라 정돈되고, 성숙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10. 복음을 더 깊이 깨달은 자, 복음에 더 합당하게 살아가게 되리라,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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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