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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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1:1-20 주님만이 내 도움이시다

1. 이스라엘은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자신들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8절을 보면  ‘나의 벗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신다.

2. 9절 후반부에는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도 붙들고 계신다.

3. 그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0절)

4.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하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염려하랴? 

5. 최근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감정 소모가 심했다. 하지만 어제 한 가정을 만나서 대화하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우리 가정이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고 또 보여주시는 만큼만 순종해서 온 이 길이 잘 못 들었거나, 잘 못 걸어온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6. 또한 하나님께서 10절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해주신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도움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온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7. 오늘도 말씀 붙들고 하루를 살아간다. 보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다들 경계하고 염려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두려워 말자. 놀라지 말자. 그저 그 분만 믿고 신뢰하고 따라가자.

8. 14절에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다. 나도 할 말이 없다. 내가 뭔가를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도우셨고, 인도하셨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 하나님의 도우심만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9. 오늘도 그렇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겸손히 그 분 앞에 엎드리는 자로 하루를 살아가기 원한다. 무익한 종의 모습을 기억하며 오늘도 무익한 종으로 그 분을 노래하는 하루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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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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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0:12-31 성도의 삶

1.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고 하겠는가?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고, 그 어느 것도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오직 참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26절). 

2. 그 분이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신다 (26절).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두렵고 염려가 가득하여도 이길 수 있는 힘은 그 하나님 때문이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두려웠을 것이다. 그랬었기에 이 말씀을 들을 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3.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씀이 나온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0-31절). 

4. 여기에서 앙망하다는 단어의 뜻은 소망하다, 기다리다의 뜻이다. 고단하고 힘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여호와를 기다림 (소망함)에서 나온다. 

5. 오해받고,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마음의 생채기가 생기는 이 상황을 내 뜻대로 처리하려 하지 아니하고 늦어도, 오래 걸려도 하나님께서 하시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언뜻 맞다고 생각이 들지만 또 그게 왜 새 힘을 얻는 방법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6.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나님께서 내 상황을 주관하시도록 내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그 분을 내 삶에 모든 것으로 인정할 때, 그 분이 내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우리는 삶에서 힘을 얻게 된다. 역설의 진리이다. 

7.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기다리니 지금의 내 상황이 좋지 않아도, 지금의 내 상황이 억울해도, 지금의 내 상황이 부유하지 않아도 근심해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일하시는 그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 속에서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8.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나님을 소망하고 있는가? 비록 내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고통과 환난이 따를지라도 하나님만 기다리며, 그 분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분의 일을 행하시길 원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고 싶다. 

9.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내 삶에 이러한 역설의 진리가 나타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주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하루가 되자. 내 삶에 임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10. 오늘도 샬롬

https://youtu.be/ddr4B8etI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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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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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0:1-11 말씀 안에서의 위로와 소망

1.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신다.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말씀하신다 (2절). 그런데 이 위로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저 말로만 ‘죄 사함 받았다’의 위로일까?

2. 3절에 보면 익숙한 구절이 나온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세례요한이 바로 떠오르는 말씀이다. 5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으로 말씀하셨느니라” 라고 말하며 이제 그 영광이 나타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3. 6절부터 8절까지는 위에 영광이 나타나리라 이야기 한 여호와의 말씀이 결코 시들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너희를 위로하고, 그 죄악이 사함 받게 할 ‘여호와의 영광’이 곧 나타나고, 너희들은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로는 무엇이고 이 영광은 무엇인가? 

4. 히 1:3 전반부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영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무엇으로 다른 이들을 위로하며, 무엇으로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사야에서 외치고 있는 이 위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위로이다.

5. 괜찮아… 잘될거야.. 때로는 이런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진정한 위로는 말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셨다.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수치와 아픔을 다 당하셨다. 그리고 죽으셨다. 

6.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 중에 오셨고, 그 말씀은 진리가 되어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실언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분이시기에 오늘도 희망을 품고, 위로를 얻고 , 소망을 가지게 된다. 

7.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은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디서 부터 위로를 얻을 것인가? 사람의 말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가? 모든 것을 우리를 대신하여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아니면 타인으로부터인가? 

8. 마음은 힘들고 답답해도 말씀이 매일 들린다. 매일 매일 말씀해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얻는다. 이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 말씀 안에서의 쉼, 말씀 안에서의 위로, 말씀 안에서의 소망을 경험하는 매일이 되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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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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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9:1-8 낫게 혹은 낮게

1. 히스기야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기도로 ‘병 나음’의 경험이 오히려 그에겐 독이 되었다.

2. 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한 것인 마냥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의 병이 나았음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냈다 (1절). 

3. 자신이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히스기야는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적국이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게 자신들의 보물과 무기를 모두 보여주는 우를 범했다. 한 마디로 자신의 패를 상대방에게 다 까버린 셈이다. 그러니 바벨론 입장에서는 '나를 잡아 먹으세요’ 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4. 영적으로 성숙, 뛰어났던 그는 그의 ‘병 나음’의 경험에서 찾아오는 ‘교만함’으로 이제 끝을 모르고 무너지고 있다. 이사야의 충격적인 예언(5-7절)에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모든 소유와 조상들의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다 끌려갈 것이다. 네 자손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해도 그는 ‘좋소이다’ (8절) 라고 대답한다. 더 이상 그에게 영적인 것도, 기도도, 하나님 앞으로의 나아감도 볼 수가 없다.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말한다. 

5. 신앙의 경험이 기적의 체험이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싹트는 ‘교만함’은 우리를 언제든지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되고야 만다.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길 것인가?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낮게' 여길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무익한 종'임을 깨달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6. 히스기야를 통해 무익한 종의 고백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라 할지니라” 눅 17:10 내가 뭘 한 것이 있는가?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에 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무익한 종의 모습인가? 히스기야 왕의 모습인가? 

7. 나를 낫게 여기는가? 나를 낮게 여기는가? 무익한 종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버지로 부터 받은 사명을 다 마치시고, 자신이 높아지길 주장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죽음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단 한 번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으셨다. 

8. 그런데 나는? 그런데 히스기야는? 내가 낫다고 여기고, 내가 많이 경험했다고 여기고, 내가 많이 안다고 여길 때, 내 안에서 ‘교만함’이 샘솟을 수 밖에 없다. 병을 낫게 하신 분도,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도,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깨달아야 내 안에서 ‘교만함’을 몰아낼 수 있다.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교만하겠는가? 

9.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이 자신의 기도나 자신의 영험함(?)에 있음을 생각하며 교만해서 나라와 후손들의 미래까지도 망치는 우를 범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18:12 예수님의 겸손함을 구하는 하루가 되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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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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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7:21-38 하나님의 열심이 모든 것을 하고 계신다 

1. 히스기야의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신다. 칼 같은 기도의 응답.. 부럽기도 하다. 

2. 그게 다가 아니다. 하나님은 혹시나 모를 추가적인 의심(?)에 대비하여 그들에게 구하지도 않은 징조를 베풀어 주신다 (30-31절). 그 세 가지 징조는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것을 말씀하신다.

3. 그런데 그 모든 기동 응답과 징조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마친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2절 후반부)

4. 기도의 응답도, 징조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내 삶에 내가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그 모든 것들도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5. 때로는 오해에 쉬이 빠진다. 내가 한 것만 같고, 내가 노력한 것 같고, 내가 애쓰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진행되고, 이루어져가는 것 처럼 오해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이뤄가고 계신 것이다. 

6. 36절은 이를 더 확실히 이야기 하신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히스기야는 기도했고, 하나님의 열심히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히스기야가 한 것이 없고, 이사야가 한 것이 없다.

7. 내가 한 것과 같은 교만함이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하신 것을 내가 내 것으로 챙기려고 해서는 결코 안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함이나 연약함을 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일에 감사하게도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8.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해서이다 (36절). 내가 빛나서도, 내가 드러나서도 안된다. 오직 여호와의 이름이, 오직 여호와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나약한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나 자신을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 나의 이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열심’이 이 모든 것들을 이루실 것이다. 그저 믿고 따라가자. 보여 주시는 만큼만 보고, 가게 하시는 곳 만큼 만 가자. 

9. 교회개척 모임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으로만 모이다 보니까 마음과 달리 참 뭔가 지지부진해 보이기도 하고 효율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의 열심이 하고 계신다. 내가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교회를 세워가신다. 내 힘이 아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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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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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7:1-20 내가 기도하는 그 분이 하나님

1. 히스기야 왕은 화가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1절),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냈다 (2절). 그리고 그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절)

2. 그리고 이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말해준다 (6-7절). 하나님의 응답은 역시나 “두려워말라” 였다. 그리고 나서 랍사게는 다시 이스라엘을 협박한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왔는데 랍사게는 다시 그것이 틀렸다는 말을 한다. 

3. 그의 협박의 말을 듣고 나서 히스기야는 이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보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4절) 기도하기 시작한다. 

4.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라고 부르고 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하나님의 호칭에서 드러난다. 내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지금 내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름은 항상 중요하다. 히스기야는 정확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5. 히스기야가 부른 것 처럼 만군의 여호와, 천한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 온 땅과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면 기도할 이유가 없다. 그 분이 앗수르의 신들과 같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 (19절) 이라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다. 

6. 누구에게 어떤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누구라 여기며 기도하는가? 때로는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 잘못 구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닌데도, 과연 이런 일이 일어 날까에 대한 염려? 그 일이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져야 하는 책임? 등등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중에 있으면서도 나를 두렵게 하거나 염려하게 한다. 

7. 내가 기도하는 분이 어떤 하나님인지 정확히 알아야 나의 기도에도 힘이 생긴다. 잘못 구하지 않는다. 그간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있다고 여기며 추진해 온 일이 있는데, 여러가지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과연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도해야 할까? 

8. 실패할 것만 같고, 아무도 이해해주지도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는가?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는가? 주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뭔가 내가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9. 이 때가 기도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까지 주신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 주님께 기도하는 하루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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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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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5:1-10 세상을 이기는 힘은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1. 세상살이가 힘든 사람에게, 억압 당하고, 지배 당하고, 사는게 고통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무엇일까? 그러면서도 가장 효과없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두려워하지 말라’가 아닐까? 

2.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두려움의 원천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그저 위로의 말 정도로 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나라가 없어졌고, 이방의 압제를 받고 있는 순간이다. 그 누구의 ‘두려워하지 말라’도 어떠한 위로도 격려도 안된다.

3. 하지만 그 두려움의 원천을 차단하실 수 있는 분이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한다면? 지금의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한다면? 그 말을 들을 때 그저 위로도 안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엄청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상황이 변할 것이란 소망이 생길 것이다.

4.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4절)

5.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은 이제 어제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에 서셨고, 그들을 위해 싸우며 구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단순히 그들을 압제에서 해방하는 정도가 아니라 맹인이 보게 되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린다고 하신다 (5절).

6. 그리고 광야에 물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6절), 사막이 변해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물의 원천이 되는 모든 만물의 회복이 있을거라고 말씀하신다 (7절). 이전의 망가진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으로 회복된다. 

7. 나를 구해주시는 은혜가, 온 세상을 회복시키는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했다. 그리스도께서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셨고, 눈먼 자를 보게 하셨고, 귀 먹은 자를 듣게 하셨다 (5절). 저는 자를 걷게 하셨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다 (6절). 그리고 우리의 사막과 같은 삶을, 광야와 같은 인생을 회복시키신다. 

8. 몇일 전 억울한 일로 속상해하며 주님 앞에 꺼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구하시리라’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 격려하시는 것 같다.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이제 괜찮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셨고, 그 분이 오셔서 구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9. 결국 세상을 이기는 힘은 내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분의 말씀에서 나오며, 그 분으로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하반절. 그 분 만 의지하고, 그 분의 말씀만 의지하는 오늘 하루 되기를 원하며, 아무것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실 분만 바라보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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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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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4:1-17 들으라, 귀를 기울일지어다 

1. 오늘 본문은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진노 (2절)가 얼마나 큰지,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해 어떻게 심판하실지 (5-14절)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2. 그러데 이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기 전에 1절은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3. 무슨 말인가? 이 심판의 선언을 듣고 너희들이 그렇게 될테니까 망하란 이야기인가? 오히려 정 반대이다. 듣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듣고 회개하면 이 모든 심판의 말씀들을 너희에게 임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4. 요나를 보내 니느웨를 홰개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모습과 동일하다. 하나님은 칼을 들고 심판의 춤을 추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랑하고, 오래 참고, 하나님의 때가 오기 전까지 회개하도록 기다리신다. 

5. 하나님께서 아직 말씀을 들려주실 때에는 아직 기회가 남았다는 것이다. 아직 회개할 기회가 남았고, 아직 돌이킬 기회가 남았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에돔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삶도 여전히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다. 

6. 하나님은 이 오래 참으심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 하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예수께 담당시키시고, 우리는 의롭다 해주셨다. 가장 사랑받았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 

7. 하지만 분명히 이 오래참음에는 끝이 있다. 그 끝에는 심판이 있다. 언제가 끝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바로 들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8. 내가 왜 태국 땅에 있는지 기억하자. 전해야 듣고, 들어야 믿는다. 지금은 직접 만나서 전하지 못한다. 지금은 준비하는 시간이다. 잘 준비 되어서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끝내시면 더 열심히 전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내 말로, 내 삶으로 바른 복음이 흘러가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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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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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2:1-20 광풍을 피하며 폭우를 가리는 곳, 예수 그리스도

1.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오해를 받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내가 가지지 않았던 의도에 대해서 오해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2. 하루종일 힘들었고,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묵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전히 마음에 어려움으로 남아있다 (해결이 될 때까지 그럴듯 하다). 오늘 본문을 펴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실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펼쳐보기 싫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말씀을 폈다. 

3. 1절은 ‘보라 장차 한 왕의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 한 왕이 누구인지는 모를 수가 없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바로 2절이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4. 그 분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그 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나의 어려운 마음, 내가 하지 않았던 내가 가지지 않았던 의도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은 분이시다. 

5. 나의 이 맹렬한 마음의 어려움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나를 그 분 안에서 광풍을 피하게, 폭우를 가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마른 내 마음을 냇물 같게 하실 분이시며, 큰 바위 그늘로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6. 오해를 받은 어려운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힘든 마음이 쉬어야 할 곳, 피해야 할 곳을 찾았다. 이 땅을 살아가는 내내 나에 대해 오해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마다 나의 마음이 이렇게 요동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를 잘 아시는 예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7.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이상하게 본다고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나님의 인정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8. 사람들이 오해할 때, 인정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광풍과 폭우를 피하게 하시지 않는가? 메마른 나의 마음에 냇물 같게 하시지 않는가? 뜨거운 햇살을 큰 바위 그늘로 피하게 하시지 않는가? 그거면 족하다. 그거면 족하다. 그거면 족하다. 

9. 인정받으려는 욕구, 오해받고 싶지 않은 욕구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그 분 안으로 피하기 원한다. 그 분의 자비와 은혜를 구한다. 내가 얼마나 옳겠으며, 내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나도 죄인일 뿐이다. 그저 주님의 자비로 오늘 하루를 그 분 안으로 피하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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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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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1:1-9 나의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간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눈에 보이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말, 눈에 보이는 병거의 많음, 눈에 보이는 마병의 강함이 있기 때문이다 (1절). 

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애굽은 사람이고,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3절). 그들의 말은 육체이고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3절). 

3.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기는 참으로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동이다. 자동으로 강해 보이는 것에는 우리의 마음이 간다. 그리고 나도 알게 모르게 그것들을 의지하고 있다. 

4. 선교사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것이 재정일 때가 많다. 어제 한동대학교회에서 이메일이 왔다. 코로나 사태 및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한동대학교회의 재정이 심각한 수준이라 모든 예산을 50%로 감축하기로 했고, 그래서 매달 오는 선교비도 50%만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다 (물론 상황이 회복되면 선교비도 원래 보내던데로 보내겠다고 하셨다). 한동대학교회에서 매달 100불 정도의 재정이 오고 있는데,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 때 처음으로 들었던 내 마음은 한동대학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들었던 마음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그동안 몇 곳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많은 곳에서 이렇게 될텐데… 어떻하지?’ 라는 염려였다. 

5. 교회 재정의 어려움의 소식을 들으며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이 나의 첫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스스로에게 안타까웠다. 선교사로 살아가며 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의지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기도했는데도, 여전히 내 마음은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된다. 

6. 우리 가정을 위해 헌금해주시는 교회들도, 개인들도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상황에 따라 요동하고 철렁 내려앉고 쉬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나에게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계속 말씀하신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억에서 싸울 것이라 (4절)’ 애굽의 말, 병거, 기병보다 더 강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싸울 것이라 하신다.

7. 5절은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것 뿐만 아니라 보호하고, 구원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8. 내 삶의 참된 평안과 안식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할 때 나타나게 된다. 재정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는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고, 구원하실 뿐이다. 그 분께 도움을 구하러 가야 한다. 그 분의 손만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이 지금도 나를 그 분의 날개 아래 보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9. 내 눈을 의지하지 말자. 내 눈은 허탄한 것을 사랑하고, 있어 보이는 것, 좋아 보이는 것을 보느라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자. 그 분이 나를 지금 보호하고 지키고, 구원하고 계신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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