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2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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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5-19 지금 욕먹는건 아니다

1. 예수님께서 무너질 성전에 대해 예언하고 계신다. 혹자는 이 부분을 단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했다고 하고, 혹자는 예루살렘의 성전과 더불어 마지막 때를 예언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2. 어떤 것을 예언한 것이든 신학적인 접근 보다는 본문을 집중해보면 사람들은 그 때를 분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그 일이 일어날 때의 징조에 대해서 묻는다 (7절). 

3.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 이 있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4.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단어는 다름아닌 전염병이다. 자신을 신격화 한 이만희와 신천지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을 통해 사람들로 부터 욕을 먹고 있는 기독교와 교회 생각도 난다. 지금의 상황과 어찌 이렇게 딱 맞는지… (그렇다고 지금을 마지막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상황도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5. 하지만 이런 우리에게 17절은 강하게 증거한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때로는 아니 자주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6. 난리와 소문, 미움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너희도 나와 같은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미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스스로가 신이 되어 사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지금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너희에게는 진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라고 말하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다.

7.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진리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진리를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설득력있게 말할 것인지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과의 사랑의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8. 지금 기독교가 욕먹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욕하는 자들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말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우리는 맞고, 너희들은 틀렸다고 말하니 그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이다. 그들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그들이 들릴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그들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들의 문화로 말해야 한다. 

9. 어쩌면 지금 이시간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이 상황이 끝나면 요이 땅 하고 달려가야 하니… 준비할 시간을 주신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에 감사한다. 잘 준비되자!!!

10. 오늘도 샬롬

* 오늘 교회개척을 준비하는 중요한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태국정부의 비상조치로 인해 한국 시간으로 7시에 온라인으로 첫 미팅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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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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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0:27-40 살아도 내 하나님, 죽어도 내 하나님

1.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이 찾아와서 어려워 보이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형수취사제를 예를 들며 부활 이후 누가 누구의 아내가 될지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사례를 들며 죽은 자의 부활 이후를 묻는다. 

2.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생각한 부활의 모습에 대한 전제가 틀렸음을 말한다. 부활의 삶은 지금 이 땅의 삶과는 완전히 다르다. 육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천사와 같이 영을 입은 모습으로 변할 것을 말씀하시고, 부활 이후의 삶은 죽음도 없음을 말씀하신다.

3. 그리고 38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죽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그들도 주 안에서 마지막 때에 부활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4.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셨고, 이미 죽어서 마지막 부활을 기다리는 지금도 그들의 하나님이셨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죽고 나서도 부활의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5.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만이 오직 나의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장차 부활하겠지만 부활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도 역시 주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6. 지금 내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순간 가장 사랑해야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내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순간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분도 바로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이다.

7. 지금 태국이 무척 어려운 상황에 서 있다. 정부가 내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예고했다. 태국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가장 과격한 안은 허가 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집에 자가격리하여 주거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마트나 모든 상점들이 폐쇄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좀 더 유연한 안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통금 금지를 하고, 종교집회를 비롯한 모든 집회 금지로 모임 자체를 금하여 코로나 사태를 통제 할 것으로 보여진다. 

8. 이로 인해 요 몇일 참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저렇게 먹어대는 아이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데리고 있을 것인지.. 집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정보가 부족하고, 외국인으로써 이 땅에서 어떻게 견디어 낼 것인지.. 아무래도 가장이다 보니 상황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내 삶의 무게를 주님 앞에 내어놓게 된다.

9. 내가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나님만이 내 하나님이시고,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이 태국 사람들도 다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산 자의 하나님께서 산 자들을 어찌 돌보지 않으시랴? 산 자의 하나님께서 몸을 입고 있는 자들의 기도를 어찌 듣지 않으시랴? 산 자의 하나님께서 어찌 그들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랴…

10. 너무 무거운 짐은 주님 앞에 내려놓자. 어차피 내가 한치도 상황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그저 산 자의 하나님 되시는 그 분 안에 거하자.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산 자의 하나님을 더욱 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그 분의 사랑 안에, 그 분의 안식 안에 거하는 시간 되길..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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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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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0:19-26 모든 것이 주님의 것

1. 22절에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라고 그들은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질문했다. 그리고 혹시나 혹시나 정말로 궁금했을 수도 있다. 

2.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 이었지만, 그들은 그 모습대로 살기 원치 않았고 계속해서 독립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로마 정부에게 세금을 바치기 싫었던 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이슈였다.

3. 예수님의 말씀은 25절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문현답이었다.

4.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가이사의 것이고, 어느 것이 하나님의 것인가? 를 구분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구분해야 옳게 드릴 수 있게 되니까… 가이사는 이제 없으니 나 스스로에게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내 삶에서 어느 것이 나의 것이고, 어느 것이 하나님의 것인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5. 생각해보면 십일조를 드리는 일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기 위해 1/10을 주님께 다시 드리는 것이고, 나는 주께로 왔고, 아이들도 주께로 왔고, 내 사역도 주님이 인도하고 계시고, 내가 한 것이 없다고 늘 고백하지 않는가? 

6. 내 삶을 곰곰히 곱씹어 봐도 내 것이라고 구분하여 주장할 것이 없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롬 11:36 말씀처럼 나의 존재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이 그 분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 분이 움직이고 계신다.

7.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것인가? 내 삶은 누구의 것인가?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은 누구에게 드려져야 하는가? 바로 우리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나는 그 분께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이 질문을 했던 사람들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찾고 있는가?

8.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간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해결될지 알지 못한다. 오직 주님만 아신다. 그 주님께 내 삶과 시간과 말과 행동과 생각과 그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오늘 말씀에 합당한 삶이다. 

9. 오늘도 그 말씀에 합당하게 하루를 살아가기 원한다. 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으며,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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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2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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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0:9-18 반복되는 죄의 역사를 끊으려면...

1. 포도원 농부들은 악한 자들이었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댓가가 요구되었지만 그들은 그러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기를 원했다.

2. 그 결과 그들은 정당한 권리를 가진 주인의 종들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상하게 했다. 욕심이 죄를 부른 것이다. 

3. 이에 반해 포도원 주인은 이러한 악한 농부들에 대해서도 선으로 대한다. 종들을 세 번이나 보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의 아들을 보낸다. 물론 농부들은 그의 아들이라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 않고 오히려 죽여서 유산을 차지하려고 한다. 

4. 이스라엘의 역사의 요약이다.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탐했던 아담으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 안으로 떨어졌고,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수 없는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세 번 종을 보낸 것은 이스라엘이 3을 특별한 완전 수로 취급하는 것으로 이해하자).

5.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아들을 보내셨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의 죄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만들었다. 

6. 역사는 반복된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지시 않지만 우리는 매우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매단다. 내 욕심과 나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이용하거나 거부한다. 

7. 1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 라고 대답한다. 맞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그런데 이 죄의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8. 지금 내 삶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욕심이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내 것 처럼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에 악이 생기고, 시험에 들고 넘어진다. 

9.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오늘 내 삶에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히 나는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진정으로 거하고 있는지를 고민해 본다. 은혜가 없으면 죄의 역사는 반복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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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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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11-27 지혜로운 종이 되자

1. 예수님은 이미 임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11절)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이 어떠야 하는지를 오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2.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길을 간 동안 그 귀인이 왕됨을 원치 않은 세상에서 장사하는 종으로 우리를 비유하고 계신다 (12-14절). 우리는 왕이 되려는 귀인의 종이고, 세상은 그 귀인을 싫어하기에 당연히 우리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싫어하는 그 세상에서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우리를, 우리의 주인을 싫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장사를 해서 남기려면 어때야 할까? 아마도 상품이 좋아야 할 것이고, 가격 경쟁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주인이나 내가 그 주인의 종과 상관없이 그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매력이 있어야 그들이 우리의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사게 될 것이다. 

4.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는 바로 우리의 열매의 풍성함으로 알게 되고, 주인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남긴 열매의 풍성함을 통해 우리를 심판하신다.

5.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지혜롭게 물건을 팔지를 계속 고민해야만 한다. 그래야 풍성하게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악한 종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주인을 두렵게 여겨 장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가진 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둔다. 주인을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도 주인을 두려워하여 장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6. 완전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까지 우리의 삶은 지혜로와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할지라도 지혜롭게 그들이 원하는 것들과 기호를 조사해서 그들이 우리의 것을 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싫어하는 주인을 우리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 

7.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들의 대응이 믿는 자들의 대응이 바로 이 종들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본질이 아닌 것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우리 왕을 소개하기 위해서 한 걸음 물러섰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각 교회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기에 뭐라고 할 수 만은 없다. 

8.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어서도 안되고, 또 너무 이로 인해 위축되어서도 안된다. 지혜로운 종들과 같이 이 사태를 넘어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할지, 그들에게 나의 왕을 어떻게 소개할지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9. 나는 그들에게 매력적인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있는가? 그들이 정말 내가 가진 물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느끼도록 그들의 죄성을 말하고 그들의 문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해되도록 말하고 있는가? 

10.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자. 시간을 아끼고, 지금 이 시간을 정성껏 살아가자.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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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1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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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1-10 진정한 회개

1. 익숙한 삭개오 이야기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무로 올라갔고, 예수님은 그러한 그를 만나 주셨다. 별다를게 없는 은혜가 넘치는 이야기이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한 시점이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이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회개한 그 순간이었다. 

3. 8절은 그의 회개를 보여준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4. 그 시대의 세리의 삶을 보면 그가 다른 사람들의 것을 속이지 않았을리 없다. 그는 로마에서 정한 세금 이상의 세금을 거둬야만 그것이 자기 수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5.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속여 빼앗인 일이 있으면(필히 있는데) 그것을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이제 거지로 돌아가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는 자신의 악행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켰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신다. 

6.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 또한 분명히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변화해야 한다. 

7.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삶이 변하는 것으로 그것이 진정한 회개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오늘 진정으로 회개했는가? 나는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내 삶을 돌이켰는가? 예수를 만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으로 인해 내 삶이 변해가고 있는가?

8. 입술로만 회개한 것을 회개한다. 삶의 변화 없이 예수님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을 회개한다. 내 삶에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삭개오와 같은 진정한 변화가 생겨나길 원한다. 물론 회개조차도 내 삶의 작은 변화조차도 내힘으로 할 수 없다. 

9. 진정한 복음을 만나고,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고, 진정한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만날 때라야 가능하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자. 그리하여 내 삶의 참된 변화가 시작되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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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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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31-43 내 안에 계신 그 분께 간절히 부르짖자

1. 예수님을 아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누군가로부터 전도를 받는 것, 스스로 성경을 읽으며 그를 탐구하는 것,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얼떨결에 기회를 잡아 예수를 만나는 것 등이 있다.

2. 오늘 맹인은 예수를 구하지도 않았고(구할 수도 없었고), 그저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듣고 그 상황을 파악하고 예수님인 것을 알고 급하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3. 그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제지하였고, 그는 그럼에도 더 크게 부르짖었다 (39절). 그의 부르짖음은 걸어가시는 예수를 멈추게 하였다. 

4. 예수님의 목적은 앞 부분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선지자의 예언대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었다. 이 맹인의 부르짖음은 그런 굳은 결심을 하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5. 얼떨결이든, 우연이든 우리 앞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면 어떻게든 불러야 한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어떠한 어려움과 일이 생기든간에 일단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6. 오늘 내 삶에 이러한 부르짖음이 있는가? 이러한 만남이 있는가? 예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그 간절함이 있는가? 이 맹인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7. 지금 나에게 예수님은 어딘가에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다. 바로 내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고 계신다. 저 맹인처럼 크게 소리지르지 않아도, 또 다른 사람의 시선과 고통도 없다. 그저 부르면 된다. 아빠라고 부르면 들으신다. 가시던 길을 멈춰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 

8. 나는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주님을 부르고 있는가?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주님께 듣고 있는가? 코로나가 점점 태국에서 퍼져가고,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때 나는 더욱 주를 크게 부르고 있는가? 

9. 주님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고 주님이 더 들으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절함의 크기가 큰 부르짖음으로 나타나면 좋겠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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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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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5-30 하나님만 의지하기

1.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어린이 (16절), 그리고 자신의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부자 (22절),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 (29절)들이다. 

2. 예수님은 매우 파격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들을 하고 계신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습의 종교인이나 거룩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천국은 드러나는 외적인 요소로 가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이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4. 아이처럼 순수하게, 자신의 많은 돈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며,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순전하게 의지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5.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왕이시란 이야기다. 이 곳에서는 돈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진 재산도 다 팔고, 가족들도 더 후순위로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오늘의 삶도 지키시기 때문이다. 

6. 이것을 돈을 가지지 말라던가, 가족들을 버리라는 말로 들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가장 중심에, 가장 사랑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 보다 낮은 자리, 덜 사랑하는 자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할 것을 가장 사랑하는 자리에, 덜 사랑할 것은 덜 사랑하는 자리에 두라는 말이다. 

7. 태국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학교가 내일부터 휴교하고 사람들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다. 이 상황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고, 가장 의지하고 사랑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자꾸만 의지하게 만든다.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8. 하지만 지금 내가 내 삶에서 결정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진리를 붙드는 일이다. 두려움은 다른 두려움과 염려를 불러오며, 하나님 보다 다른 것들을 더 붙들게 한다. 그렇기에 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과 같이 '하나님 외에 다른 도움은 없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다. 

9. 태국도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태국의 영혼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가? 주님으로 부터 배우기를 원한다. ‘주님만, 주님만, 주님만 의지하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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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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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14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자

1.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1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항상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방법, 내가 원하는 시점에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오늘 본문에는 스스로를 일컫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 나온다. 그는 불의하지만 계속해서 과부가 찾아와서 부르짖을 때, 그는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결심한다. 

4. 이유는 단순하다.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과부가 와서 자신을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7절은 ‘하물며’로 시작한다. 불의한 인간 재판관도 이러한데,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는가?

5. 우리가 오늘도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금 내가 기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6. 세상의 난리는 우리를 낙심하게 한다. 코로나의 소식은 점점 더 나빠진다. 태국의 경우도 그간 정부가 잘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점점 더 확진자들이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생겨나고 있고, 다른 선교사님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2주간 휴교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7. 이러한 소식 속에서도 내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분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 분이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상황이 지금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계속 흉흉한 소문이 들릴지라도 여전히 그 분은 선하시기 때문이다. 

8. 그 선하신 분이 나의 아버지되신다. 물론 그렇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항상 나를 피해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도한다. 그 선하신 분이 듣고 계시기에.. 그 분이 우리의 기도에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이기에…

9.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임을 갖는 것도 조심스러운 요즈음이다. 선교사가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하지만 이 때가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께 태국을 놓고 아뢸 때다. 태국의 영혼들과 교회의 개척을 놓고 기도를 쌓을 때다.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그 분께서 듣고 응답하실 것이기에..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아뢰자.

10. 오늘도 큐티 나눔을 받으시는 모든 분들의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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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3. 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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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7:11-19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이다. 

1.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을 잘 알고 있다. 급할 때와 급하지 않을 때의 마음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10명의 나병환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2. 예수님을 만날 때만 해도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크게 부르짖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병이 해결된 것을 보자 다들 예수님을 잊어버렸고, 오직 단 한 사람만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감사했다. 그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3. 아마도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정체성이 그들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단 한 명의 사마리아인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죄인 혹은 부정한 자임을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4. 죄인이고, 부정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여야 은혜가 은혜로 느껴지고, 구원받은 것이 감격이 되는 것이지 내가 의인이고, 내가 은혜를 당연히 받을 자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에 감사할 수 없는 것이다.

5. 팀 켈러는 이것을 종교 그리고 비종교, 그리고 복음으로 설명한다. 9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롭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빚을 져서 당연히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감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자 였기 때문이다.

6. 하지만 진정한 복음을 깨달은 자는 오히려 사마리아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별과 무시가 그들에게 오히려 은혜를 은혜로 느끼게 만들었다. 

7. City to City 교회개척 집중과정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도 동일한 것이었다. 복음은 태국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는 절대로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가장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이다. 

8. 내가 복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고, 내가 가장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고, 내가 가장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어떠한 복음을 전할 것인가? 내가 바로 그 9명과 같은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자. 내 안에 복음의 은혜가 가장 필요하고, 복음 부흥이 가장 필요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9. 화장실 들어가기 전의 마음이 늘 내 안에 있기를 원한다. 구원의 감격과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나에게 실제가 되기를 원한다. 그들만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바로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임을 절대로 잊지 말자. 그것이 복음 전달의 가장 첫 시작이다. 

10.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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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