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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8:33-43 하나님을 램프의 지니로 만들지 말라
자신의 백성들에 대한 기도를 다 마친다음(33-40절) 솔로몬은 이제 다른 민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41-43절). 어제 말했던 타자의 하나님을 부른 것일까? 어떤 마음이었을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솔로몬은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적극적인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그들이 혹시 소문을 듣고 온다면…(43절)의 전제가 있다. 선교학에서는 이것을 가는 선교, 오는 선교로 구본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방인에 대한 배려도 있다고 하니 그것만 해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과 다니엘의 차이점이 보이는 구절이 있었다. 40절은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의 모든 기도를 올려드리고, ‘그리하시면’ 주를 경외하겠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어떻게 기도했는가? 단 3:18 ‘그렇게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에게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그들의 상황과 관계 없는 믿음을 이야기 했다.
‘그리하시면’의 솔로몬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다니엘이 계속 비교된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솔로몬처럼 이것 저것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리하시면’ 주님을 잘 섬기겠다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다니엘과 같이 내 삶에 어려움이 있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만 섬기겟다고 기도하는가? 나의 기도는 솔로몬과 같을 때가 너무도 많다. 타자의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나의 하나님께 나를 위한 램프의 지니가 되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 솔로몬과 같이 직설적으로 나를 위해 램프의 지니가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지만 조금 더 고상한 방법으로 하지만 내용은 같은 기도를 올려 드리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위한 나만의 램프의 지니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 맞추자. 하나님께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을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작은 신으로 만들지 말고, 우주보다 더 크신 그 분의 자리에 계시도록 하자. 결국은 마음의 주인 문제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왕이신가? 아니면 내가 왕인가? 내가 램프를 지닌 알라딘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은 기도의 모습을 좀 바꿔보기 원한다. ‘~해주세요’의 기도 보다는 ‘주님의 마음이,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라는 기도를 드리기 원한다. 정말로 묻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조금 더 나를 비워내고 조금 더 주님으로 채워내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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