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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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2:11-19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1. 다윗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위해 찜해놓으신 솔로몬에게 그리고 그 솔로몬을 도울 방백들을 권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11, 16, 17절)

2. 성전건축을 할 솔로몬을 축복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며 (11절),’ 그 성전을 열심히 건축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16절),’ 라고 축복하며 마지막으로 솔로몬을 도울 이스라엘 방백들에게도 동일하게 말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18절)’. 

3. 다윗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온 우주에 그 모든 시간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인간이 만든 한 장소로 제한할 수 없지만 다윗의 마음의 의도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4. 하나님과 늘 동행하려고 했던 다윗의 삶, 하나님께서 늘 다른 이들과 함께 하시길 원하며 축복하던 다윗의 삶에서 성전의 정신이 엿보인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겠는가? 

5. 다윗은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충만한 동행 가운데서 성전 건축을 물었고, 준비했고, 이제 성전을 준비해야하는 아들 솔로몬과 그의 방백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축복한다. 

6.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성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역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은 우리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윗이 한 축복이 깊은 울림을 준다. 

7. 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가운데 함께 계시는가? 나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배제하고 홀로 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간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 없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름은 교회인데, 세상의 성공과 세상의 기쁨을 쫓고 있지는 않은가? 

8.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길 원한다. 교회를 세워가면서 이건 어떻게 해야 하지? 저건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 기존에 내가 가진 생각과 태국의 문화적, 환경적인 차이에서 오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다양하다. 그런 고민과 질문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원한다. 

9. 교회가 교회 되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아멘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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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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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2:1-10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는가?

1. 다윗의 미담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연예인 유재석을 ‘파파미’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고..)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 성전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 나 같으면 맘이 상할 법도 하다. 좋은 의도로 하나님께 이야기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좋은 제안을 거절하시다니.. 부르르 떨었을지도 모르겠고.. 에잇 집어치워.. 하며 성전건축 프로젝트를 쫑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3. 오히려 그는 성전 건축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준비하였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돌을 미리 다듬게 하고 (2절) 만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3절) 심지어 놋은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많이 (3절), 백향목도 무수히 준비 (4절) 하였다. 

4. 하나님이 자신에게 금지한 성전 건축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토대는 그가 준비하였다. 솔로몬이 커서 때가 이르면 '요이 땅' 하고 바로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다. 

5.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했고, 누가 이 일을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전을 짓든, 아들이 성전을 짓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오직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6. 다윗과는 다르게 실제의 삶에서는 '누가 했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누가 했느냐?’보다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느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일들이 되어지는 모습이 달라져 보일 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겠지만 선교는 더욱 더 그렇다. 

7. 선교사가 했느냐? 현지 사역자가 했느냐? 팀이 했는냐? 우리 성도들이 했느냐? (사실은 '내가 드러나느냐'의 질문일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느냐?’의 질문일 것이고, 그에 맞는 나의 자리에서 섬기면 된다. 비록 그 일이 때로는 못과 돌을 준비하는 일일지라도.. 나무를 잘라 준비하는 일일지라도.. 그 못과 돌과 나무가 결국은 성전의 어느 한 부분을 구성하게 되지 않는가? 

8. 이 곳에 나의 나라를 세우고 싶은가? 그러면 내 생각대로, 내가 드러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의 일을 하면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싶은가? 그러면 내가 드러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시게 하고, 그 분이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면 되는 것이다. 

9. 나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있기를 원하며..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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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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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1:1-17 나의 강점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는 삶

1. 다윗은 인구조사를 한다. 인구조사가 뭐 그리 큰 일이냐 할 수 있지만… 인구 조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군대의 숫자를 신뢰한다는 의미에서 불순종과 불신앙을 의미한다. 다윗도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보다.

2. 7절에서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시니 다윗은 회개한다. 다윗의 강점이다. 빠른 회개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일에 대해서 세 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신다 (10절). 어떤 것도 쉬운 재앙이 없다. 하지만 다윗의 선택은 한결 같다.

3.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13절). 그는 세 가지 재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긍휼이 크시고 선하신 분임을 잊지 않았고, 어차피 받을 재앙이라면 하나님의 손으로 받는 재앙을 원했다. 

4. 참으로 한결같다. 실수 했지만, 넘어졌지만 재앙 중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 중에도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려고 하였다. 그의 마음이 드러나는 구절은 17절이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5. 그는 진정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목자였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기도하시지 않았는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중) 다윗의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고 하였고, 어떤 잘못도 남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서 이 죄악을 받으려고 하였고, 이유없이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다. 이것이 다윗의 강점이었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수 밖에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6.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어떠한 리더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께 붙어 있으려고 하는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그들을 향해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다윗은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곁에 있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넘어짐은 그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었다. 

7. 그의 인생은 시편 37:24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이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다윗의 강점이 있지만 다윗이 잘난 것 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 위에 있었다. 

8. 나의 강점 위에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가 부어지길 원한다.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양 떼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기 원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리더로 잘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어제 기도해주셔서 능 형제와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로 마음이 활짝 열려서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해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또 태국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는 리더로 세워지도록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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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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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9:1-19 다윗의 제자훈련(?)

1. 다윗은 암몬왕 나하스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를 기억하고 (2절) 그의 죽음을 문상하러 갔는데, 암몬 자손은 오히려 다윗의 신하를 정탐하려고 왔다고 하며 수염을 깍고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잘라 그들을 모욕했다 (4절). 

2. 그리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군대를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왔다 (7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어의상실의 일이었다. 모욕도 자기들이 하고, 군대도 자기들이 보내고… 그리고 심지어 연합군이 쳐들어왔다 (9절).

3. 오늘 다윗의 장수 요압의 고백이다.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3절) 그의 고백은 다윗의 고백과 심히 닮아 있다. 오늘 본문을 처음 읽을 때에는 다윗이 한 말인줄 알았을 정도이다. 

4. 다윗의 제자 훈련(?)이었다. 리더였던 다윗의 고백과 삶의 모습이 요압이라는 장수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요압이 한 고백이지만 마치 다윗이 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리더의 영향력이고, 이것이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가지는 힘이다. 

5. 물론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살짝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요압이란 장군의 삶을 다윗 없이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아둘람 공동체에서 그들은 늘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다윗의 말하는 것, 하나님께 부르짓는 것, 하나님께 묻는 것들을 늘 본 사람들일 것이다. 제자훈련은 특별히 앉아서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나누고 하는데서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리더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6. 오늘 능 형제와 두 번째 성경공부를 한다. 능 형제는 38살로 새신자이다. 특별히 신학적인 질문이 많다. 그는 지금 예수님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7. 다윗의 삶을 보며 영향을 받아서 다윗과 같이 말했던 요압을 보며.. 예수님을 보며 복음을 위해 순교의 길을 걸어간 11 제자들을 보며.. 오늘 제자 훈련을 다시 한 번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도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윗도 예수님도 아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보고 변화될 선한 무엇인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8. 그래서 다시 예수님 앞에 서서 예수님만 의지한다. 내 삶을 변화시켜가고 계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거한다. 나는 아니고, 나는 연약하고, 나는 못하지만 그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시기 때문데.. 그 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완전하여질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그 분 께만 나의 도움을 둔다.

9. 진정한 리더이신 예수께서 능 형제를 변화시키리라..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와 태국의 영혼들을 변화시키리라… 나는 아니다. 그 분만이 해답이시다. Not I, but Christ. 오후에 성경공부 가운데 진정한 해답이신 예수님만 드러나시길… 또한 그렇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0. 오늘도 샬롬


*한국 시간으로 오후 6:40-8:40에 성경공부가 진행됩니다. 믿음이 생기고, 해답되시는 예수께서 말씀해주시길 기도해주셔요. (가운데 검정색 옷이 능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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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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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8:1-17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에 매일 서도록 하자

1. 하나님께서는 늘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습관을 가진 다윗을 축복하셨다. 6절, 13절 하반부에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쟁이 빈번한 고대 시대에 어디로 가든지 이긴다.. 상상하기 힘든 축복이다. 

2. 다윗은 그 축복에 걸맞는 삶을 또한 살았다.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서의 행적은 14절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3. 지금처럼 인권이 향상되고,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도 정의와 공의가 정말로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데, 그 시절에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또한 인간 역사가의 기록이기에 모든 부분이 반영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그 나라에 억울한 일, 정의가 무너지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삶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많은 부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나라에는 100%의 정의와 공의는 없었겠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나라는 모든 정의와 공의가 순도 100%로 충만한 나라일 것이다. 

5.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그런 나라일 것이고 (사 11:6), 다시는 해와 달이 빛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가 올 것이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사 60:19)

6. 지금은 다윗과 같은 정도의 왕도 대통령도 있을 수 없는 그런 시대이지만 여전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 언젠가 다윗이 맛배기로만 보여주었던 그 왕이 다시 오셔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의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왕 앞으로 매일 나아갈 수 있었던 습관 때문이었다.

7.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을 대면하면 우리의 삶은 그 분의 빛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던 해의 빛도, 달의 빛도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질 때 우리의 인생은 그 분을 조금씩 닮아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빛 앞에 서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에게 빛으로 보여주는 태양의 빛과 달의 빛에 현혹되어 그것이 진짜 빛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8.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에 매일 서자. 하나님을 매일 대면하는 습관을 가지자. 어떠한 일이 생겨도 하나님 앞으로만 나아가자. 그것이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이며, 하나님의 빛으로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조차도 결국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자.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거하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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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2. 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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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7:16-27 하나님 앞에 서는 습관

1. 하나님께서 어제 본문에서 하신 그의 가문과 그의 나라에 대한 축복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그의 감사와 찬양이 흘러 넘친다. 당연한 반응이고, 당연한 감사이다.

2. 오늘 다윗의 모습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16절 시작의 한 구절이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그는 또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었다. 기쁠 때에도, 힘들 때에도, 슬플 때에도, 감사할 때에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었다. 오늘 구절은 그의 습관과 같은 하나님 앞에 있었던 그의 모습의 반영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던 것 처럼 말이다. 

3. 여호와 앞에 설 때, 우리의 반응은 겸손함을 의지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작음을 실제적으로 발견하게 되어 있다. 다윗은 고백한다.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16절) 겸손함의 반응이 아니다. 가장 크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죄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고백일 것이다. 

4. 하나님 앞에 설 때 나의 생각과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크신 분 앞에 설 때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의 강점은 항상 습관처럼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그의 연약함에도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다윗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그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5.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상황과 환경과 관계 없이 모든 질문에 답이 되시는, 언제나 옳으신 그 크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좋을 때만, 필요할 때만 하나님 앞에 서는게 아니다. 모든 순간 순간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6. 내가 얼마나 작은지, 보잘 것 없는지, 내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겸손해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이 복음 아닌가?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내가 커 보이고, 내가 잘나 보이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여진다. 

7. 오해하지 말자. 나는 오직 그 분의 은혜로 내가 누구인지, 내 집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윗의 이 습관이 참으로 부럽다. 다윗의 이 삶의 패턴이 참으로 부럽다. 나는 화가나면 그 분을 하나님 앞에서 풀려고 하지 않는다. 내 힘으로 해 보려고 한다. 여전히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 여전히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완전한 오해다. 까불지 말자. 오늘도 하나님 앞으로만 나아간다. 우리를 모든 죄와 억압에서 자유케 하신 완전한 하나님 앞으로만 나아간다. 이것이 나의 삶의 습관이 되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던 다윗과 같이 습관을 좇아 하나님 앞에 서는 내가 되길…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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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1. 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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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7:1-15 오직 한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

1.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께 향해 있다. 자신은 백향목 궁전에 거주하지만 여호와의 언약궤가 휘장 아래에 있는 것이 그의 마음을 쓰이게 만들었다 (1절). 이 부분만 봐도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던걸로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할 처소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2. 불편한게 눈에 보이고, 없는 것이 눈에 보일 때에 그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은 그래도 쉬운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불편한게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다윗의 시선은 하나님의 언약궤에 가 있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여러가지 약속을 해주신다. 그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7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있고 (8절), 모든 대적을 멸하고 (8절), 이름이 존귀케 되고 (8절), 이스라엘이 다시 옮겨다니지 않으며 (9절), 대적들로 복종하게 하고 (10절), 한 왕조를 세우게 한다(10절)고 하셨고, 마지막으로 11절에 네 아들 중 하나가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11-12절) 라고 약속하신다. 

4. 그 다음 하나님의 약속은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13절) 이었다.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나라를 견고케 하고, 원수들로 부터 이기게 하셨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의 왕위를 견고케 하시고 그 에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5. 이 부분에서 눈 여겨 볼 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자녀’의 관계를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보통 '하나님-내 백성'의 관계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그의 자녀에게 ‘하나님-백성’이 아니라 ‘아버지-자녀’의 관계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 친밀하고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약속의 시작이 무엇인가? 다윗의 하나님 사랑이었을 뿐이다. 

6.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다윗 한 사람을 통해 그 민족과 그 가정,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 한 사람에게 향해 있다. 그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함께 복을 누리기도 한다. 모세의 때에도 모세 한 사람으로 인해 멸망받을 뻔한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주 그 화를 면하고 복을 받았는가? 

7. 하나님께서 하신 이 약속으로 인해 다윗 이후의 유다 왕들이 그들의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를 얼마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살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께 나아갈 참 길을 얻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언제나 일하신다. 

8. 나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나는 그 한 사람인가? 하지만 정말로 확실한 것은 나는 그 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the Man of God이 될 수 없다. 진정한 그 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 예수께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 엎드려야 한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내가 그 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예수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9.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다윗이 건축하려고 했던 그 성전이 바로 내 몸이다. 내 안에 성령께서 거하신다. 그저 진심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헛된 욕망을 버리고, 오직 그 한 사람 되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교회를 개척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희 수쿰빗 언약교회가 오늘 말씀처럼 특별한 한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앞으로만 나아가기를 애쓰는 교회가 되기를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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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1. 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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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4:1-17 오직 그 분에게만 묻고, 듣고, 순종하는 삶

1. 다윗의 가장 강점은 묻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 들었다. 하지만 묻는 것 보다 더 큰 강점이 그에게 있다면 그는 묻는데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순종하기 위해서 물었다는 것이다. 

2. 10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14절도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라고 기록하고 있다. 14절의 ‘또’라는 단어는 그의 물음이 단순히 상황에 따른 일시적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순종은 16절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그는 묻기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물었다면 들은대로 행하는 자였다. 이것이 그의 연약함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게 하였다. 

3. 물을 때는 묻기만 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다. 순종하기 위해서 묻는 물음이어야 한다.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뛰어나신 하나님께 묻는다면 그 분의 지혜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면 물어야 하고, 들었다면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4. 다윗과는 다르게 내 삶에는 반 쪽 짜리 물음이 있다. 내 생각과 비교해보기 위해서 묻는 때가 있다. 나는 이미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물어본다. 아마도 틀릴 때를 대비한 보험(?) 쯤으로 생각하고 묻는다. 순종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 분의 뜻이 내 생각과 일치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사실은 내 생각을 그 분의 생각에 일치시켜야 하는대도 말이다. 

5. 또 다른 반 쪽 짜리 물음이 있다. 그냥 형식상 묻는 물음이다. 위의 질문이 보험용이라면 면피용의 질문도 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다는 프로세스를 거침으로서 나는 잘못한게 없이 가고 있다는 면피를 하거나 확신하려는 용도로 질문하기도 한다. 

6.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물었고, 들었고, 그 들음에 순종했다. 이것이 그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만들었다. 교회를 팀을로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질문들을 주님께 던졌고, 모든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했었다. 

7. 교회개척을 팀으로 한다는 것은 홀로 할 때 보다 강점도 많지만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 생각을 함께 나누며 조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홀로 할 때와는 다르게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다. 주변에서 상황을 대충 아시는 분들이 여러가지 질문도 하고 조언도 한다.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저렇다고 말한다. 때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영향을 받기도 한다. 

8. 주변에서 조언들을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하지만 오늘 다윗을 보며 다시 한번 결정하는 것은 그 조언들은 참고일 뿐이다. 선교사가 할 일은 주변의 소리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물어야 하고, 하나님께 들어야 하고,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귀를 기울여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 

9. 다윗의 강점이 나의 강점이 되기 원한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묻기 원한다. 듣기 원한다. 그리고 들은대로 순종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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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1. 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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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3:1-14 예수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

1.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좋은 의도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 언약궤를 옮기다가 소의 뜀박질로 궤가 떨어지려고 하였고, 그것을 막으려고 궤를 붙잡은 웃사는 죽게 되었다 (10절). 그의 의도는 매우 선하였다. 하나님의 성스러운 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그의 손으로 떨어지는 것을 잡은 것이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한 자기희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 그를 치셨고, 그는 죽게 되었다.

2. 그의 입장에서도 또 나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은 자의 죽음이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모든 과정을 이미 하나님께서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궤를 옮기던 웃사도 아마도 알았을 것이다.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나 좋은 의도였고, 얼마나 선한 행동이었는가? 억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3. 하지만 그것이 죄인인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차이였다. 그 누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상징물로 만드신 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좋은 의도였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인간의 죄악이 닿은 일이었고, 그렇기에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우리의 선한 노력으로 하나님께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 기준으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여도, 착하게 살아도, 우리는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닿을 수 없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세도 직접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임재만 느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 마다 목욕을 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하였고, 심지어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하여 ‘아도나이’라고 돌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6. 이 끝없는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간격을 그리스도께서 허무셨다. 죄와 허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고, 가끔 선한 의도로 선하게 살아가지만 끝도 없이 마음에, 생각에 악을 쌓아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이 죄와 거룩함의 간격을 메꾸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7. 이스라엘 율법에는 어떠한 거룩한 것이라도 부정한 것에 닿으면 둘 다 부정한 것이 된다.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정한 것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거룩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부정한 것에 손을 대든지 그 모든 것은 거룩한 것이 되었고, 낫게 되었고, 회복하게 되었다. 

8. 율법이 완성된 것이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간은 거룩을 지키기 위해 모든 부정한 것을 피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리스도께 오는 자는 모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해서가 아니다. 그 분께 닿는 모두가 거룩해지고 온전해지고, 회복되기 때문이다. 

9. 웃사를 통해 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게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함을 잊지 말자. 나의 행위를 통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으로 인해서만 거룩해질 수 있다. 

10. 그렇게 나와 가족들, 그리고 태국의 영혼들을 대할 수 있기를.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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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1. 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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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1:1-9 온전히 마음을 드린 다윗을 통해 말씀이 성취되다

1. 다윗의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다윗 스스로가 왕이 되고자 함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을 부으시며 전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다 (3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다윗이  말씀대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그의 가진 신체적 자질이나 은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온전한 마음과 태도 때문이었다. 그가 왕이 되려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3. 삼상 13:14절에 보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지금의 번역으로는 맞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의 마음이 그의 모든 연약한 조건 (막내 아들이라든가…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는 일 등등) 을 뛰어넘어 왕이 되게 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이 언제나 원하시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것을 원하시지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를 로보트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작동 버튼을 누르면 그대로 움직이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5.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6. 다윗은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어제 사울의 범죄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윗의 인생을 보면 매 순간 하나님께 묻고 듣고 순종한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인다. 그래서 나의 영어 이름도 ‘David’이다. 태국에서도 나를 아짠 데이빗 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나는 다윗의 인생을 따라가고 싶어 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7.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신다. 다윗이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그의 말씀을 성취하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게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다. 

8.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묻고, 듣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묻지 않고 듣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사울의 인생을 보라. 처음의 시작과 다르게 마지막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울의 인생은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게 만들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았는가? 

9. 내 마음을 주님께 더욱 드리고 싶다. 내 마음을 다해서 더욱 더 그 분만 사랑하며, 더욱 더 그 분만 의지하고, 그 분께 묻고, 그 분께 들으며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베드로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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