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 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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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5:30-47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시도록

1.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숲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너무 세세한 것에 집중하다가 보면 큰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상이란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연구했던 방법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2.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39절)”  그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암송하고 외우고 연구했다. 성경의 율법을 연구하고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애썼다.

3. 그러다가 그들은 그 성경 전체가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눈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놓치게 되었다. 각각 매우 중요한 것들을 연구하느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를 놓치게 된 것이다.

4.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놓친 것은 단순히 성경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다. 

5.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0절)" 그들의 생각으로는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왕으로 오셔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주실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거부하고 그 분에게 나아가 영생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6. 내 마음에 어떠한 생각과 지향하는 부분을 가지고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을 성경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내 생각을 뒷받침 하게 된다. 성경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뒷받침 하는 재료로 성경을 쓰게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7. 나는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설교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생각을 뒷받침 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가? 최근 한 선교단체가 백신을 맞으면 조종당한다 등의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설교 중에 하며 코로나 검사도 거부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다 알 수 없지만 가뜩이나 교회에 대한 실망감이 큰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다. 

8. 그 분이 한 설교 전체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어느 성경구절을 가지고 했으리라.. 설교니까.. 하지만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야지 내 생각이 말씀을 사용하면 안된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을 매달았듯이 지금의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 복음을 십자가에 매달게 된다. 

9. 십자가를 져야 할 사람은 그리고 내가 부인해야 할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이번 주 설교가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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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 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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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5:1-18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이다

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치셨다. 누구든지 베데스다 연못이 움직이면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낫게 되는 약간은 신화적인 내용이다. 

2.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증환자는 나을 길이 없다.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경증이든지,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3. 예수님은 그에게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물으신다. 도대체 누가 낫고 싶지 않겠는가? 심지어 자신의 병이 38년이나 되었다면 말이다.. 내가 43살인데.. 기억이 있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팠을텐데.. 어찌 낫고 싶지 않겠는가?

4.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병자에 있지 않았다. 안식일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그것만 보고 있었다.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형식만 알고 그 의미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요즈음의 상황 같다. 

5.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는지 의미는 알지 못하고, 오직 대면예배만 주장하는 그런 느낌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계명을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웃의 건강과 고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예배만 소리높여 외치는 그런 느낌이다. 왜 대면예배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마치 안식일 논쟁과 같이 의미와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느낌이다. 

6. 유대인들은 그렇게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을 죽이고자 하였다 (18절). 모든 일에서 형식에 얽매이면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형식은 중요하다. 사람은 겉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7.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만드셨을까? 고민하지 않고 형식에만 얽매이면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죽일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의미인가? 형식인가? 

8. 살리기 위한 형식인가? 죽이기 위한 형식인가? 살리기 위한 의미인가? 죽이기 위한 의미인가? 고민없이 전통에 얽매여 넘어지지 않기 원한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교회에게.. 눈에 보이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더 중요한 의미와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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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 1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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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43-45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야 한다

1. 자신의 아들이 병든 왕의 신하가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아들의 병을 해결할 수 있을거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반신반의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 49절을 보면 그의 믿음은 아이가 죽기 전에는 와야 그를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이러한 생각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도 나타난다.

3. 나사로가 죽고 나서 오신 예수님께 마르다와 마리아는 원망(?)을 한다. 예수님을 믿는데 자신의 생각으로 이정도면 되겠지? 라는 지점 까지만 믿는 것이다. 이 정도 아픈 것은 낫게 하시겠지? 이정도의 문제는 해결하시겠지? 죽기 전에는 낫게 하실 수 있겠지만 죽고 나면 못 살리시겠지? 

4. 하지만 그런 믿음에도 예수님은 그 아이를 말씀으로만 살리셨다. 이 신하도 이제는 예수님의 그 말씀만 믿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때에 긴급 연락할 것이 있었겠는가? 실제로 나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말씀을 믿고 간다. 그의 믿음이 갑자기 이전보다 커진 것 같다. 

5.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약한 것을 아신다. 너무나도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늘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왜냐하면 나의 믿음도 나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그 신하는 아들이 말씀으로만 낫는 것을 경험하고 자기와 온 집안이 회심하게 된다. 예수님을 제한했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께 전적으로 나아오게 된 것이다. 단순히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적을 보고도 성경에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7. 그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것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 우리의 삶은 변하게 된다. 믿음이 커지게 된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그저 신앙의 주위를 멤돌 수 밖에 없다. 묵상을 하며 온라인 예배가 생각이 났다. 우리의 온라인 예배는 어떠한가? 정말로 성도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는 시간인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가? 

8. 사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볼 길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준비할 뿐… 하지만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서 예배하든, 집에서 예배하든.. 그 곳에 함께 하시는 분은 교회의 리더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게 아닌가? 

9.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만나주시길.. 예배 가운데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더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예배를 위해 기도하되, 우리 성도들에게도 함께 기도할 것을 제안해야겠다. 

10.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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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1-14 목이 마른데도 모르는 사람들

1. 예수님께서 굳이 사마리아로 가셨다 (4절).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는 전례로 볼 때 의도가 분명히 있으셨다. 그리고 가장 더운 정오에 우물 곁에서 그대로 앉아서 쉬셨다 (6절)

2. 유대인들에게 우물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었다.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우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리라. 여튼 예수님은 그 우물 곁에서 기다리셨고,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그 더운 시간에 물을 길러 왔다.

3. 대부분의 사람들은 덥기 때문에 저녁에 물을 길러 나온다. 이 여자는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여러가지 이유에서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위와 뜨거운 햇빛을 뚫고 정오에 물을 길러 왔을 것이다. 

4. 이 여자는 육신의 목이 말랐다. 그러니 물을 길러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영의 목도 마른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그녀에게 생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10절). 그리고 화제는 이제 그 영적인 영원한 생수로 집중된다. 

5. 우리의 삶은 실제로 늘 목이 마르다. 육적인 목도 영적인 목도 마르다. 하지만 영적인 목이 마르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살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살아간다. 아니면 때로는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 여인이 그랬다. 예수님이 생수의 화두를 꺼내기 전에는 그녀 스스로가 목이 마른지 몰랐을 것이다.

6. 하지만 예수께서 그 화두를 꺼내고 나서는 봇물처럼 질문이 쏟아진다 (11-12절). 목이 마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영적으로 목이 마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물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적인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일 것이다.

7. 태국에는 솔직하게 이런 사람들이 많다. 영적인 목이 말라 불교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하거나 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예수를 이야기 해도 잘 듣지 않는다. 스스로가 목이 말라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들이 하고 있는 선행도 불교의 의식도 그들이 목이 말라서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심지어 기독교인들 조차도 목이 말라서 예배의 형식을 빌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8.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나도 마찬가지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4절)먼저 우리가 어떠한 결핍과 목마름을 가졌는지를 부지런히 연구하자. 

9. 그리고 그들의 결핍을 그들의 이해할 수 있는 문화와 언어로 이야기 하자. 그리고 나서 영원한 생수인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 오늘 묵상은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시작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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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22-36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이시다. 

1. 너무나도 유명한 세례요한의 고백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또한 고백처럼 살아내기는 너무나도 힘든 말씀이다.

2. 세례요한이 자신을 쇠하여야 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것은 그가 신랑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29절). 또한 그가 위로부터 온 이가 아님을 알았고, 땅에서 난 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31절). 

3. 이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신랑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위로부터 온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인식이 나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4. 교회를 개척하여 2달이 지났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그 분의 몸된 지체로 움직이고 있다. 때로는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 인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그렇게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고서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때가 있다.

5. 세례요한과 같은 자기인식의 모습이 있을 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할 수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 있을 때, 비로서 나는 안되고, 그 분만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6.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나를 나로 알 때 새로운 눈이 열린다.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고백하면서도 왜 자꾸 내 생각이 우선이고,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고 있는가? 요즈음 계속 듣고 있는 히즈윌의 '믿음이 없이는' 이란 찬양이 생각난다. 

7. 이 찬양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나그네로 왔는데, 왜 주저앉게 되었나 나는 청지기인데 언제부터 내 삶에 주인이 되어 버렸나” 세례요한은 확실히 알았다. 자신은 나그네였고, 자신은 청지기였고, 자신은 그저 그 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있을 수 있었다. 

8.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이시다 (Not I, but Christ). 그 분만이 주인이 되셔야 하고, 그 분만이 왕이 되셔야 한다. 내가 왕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을 내려놓기 원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뭘 그렇게 하겠다고.. 주님이 일하시도록 주님이 주인되시도록 오늘도 그 분께 더 맡겨드린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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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21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자. 

1.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고, 그는 거듭납에 대해서 예수님께 배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들려진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4절) 라고 말씀하시며 그 인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을 또한 말씀하셨다. 

2. 그리고 유명한 요3:16절을 말씀하신다. 독생자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 유명한 구절 이후에는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18절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3. 심판은 단순히 마지막 최후 심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 그 믿지 아니하는 것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무슨 심판을 받은 것일까? 때로는 그들이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고 가진 돈으로 더 잘 먹고 잘 살고, 마지막에는 병원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있지 않는가? 

4. 우리의 구원을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주 기도문처럼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으로 임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의 모습이다. 

5.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의 진정한 왕이 아니라 수많은 우상들이 왕이고, 재물이 왕이고, 사역이 왕이어서 하나님이 아니라 그 우상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잘 나가보이지만,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삶은 지옥이다.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통치하심 없이 내 뜻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심판을 받은 삶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선해보이는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통치하심 없이 내 생각, 내 뜻으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이 아니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높이려는 교묘한 행동일 뿐이다.

7. 매일의 나의 삶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정말로 그 분의 통치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도 쉽지 않은 질문이다. 최근 들려오는 뉴스 속에서 기독교가 자칫 죽어서 가는 구원에만 집착하여 이 땅의 삶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8. 하지만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오늘, 지금 순간 순간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들과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기 원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안에 오늘을 살아가기 원한다. 

9.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 이미 심판을 받은 삶이 아니요, 구원의 삶이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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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25 예수님과의 거리두기는 더 위험하다

1. 실제로 성전 안에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장사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분노로 그 판을 뒤집지 않으시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그것을 뒤집으셨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17절)

2. 어떠한 일에 대한 나의 분노는 그저 내 안의 개인적인 분노인가? 그 일에 대한 나의 감정인가? 아니면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분노인가? 여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열심이 있으셨고, 표적을 요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표적으로 제시하셨다. 

3. 1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그 분의 몸이 우리를 위해 헐어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은 나에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4.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헐어 우리의 몸이,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게 하셨는데,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성전에서 (우리 몸에서) 다른 것들을 섬기고 있다. 물질, 성공, 나 자신, 자녀, 사역 등등등..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성전에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다. 

5.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우상들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네 안에 다시 성전을 일으키리라’ 라는 말로 들린다. 물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는다. 

6.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있는가? 하나님의 성전이 내 몸 안에, 내 생각 안에, 내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분노와 시기, 질투, 그리고 탐심과 음욕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잘 포장하여 거룩해 보이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예수님은 그것들을 헐어 버리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7. 헐어 버리면 망할 것 같은데, 죽을 것 같은데 그 분이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말한다. 겸손해 보이려고 하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 회개하는 척 하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거룩해 보이려고 하지 말고 거룩해져야 한다. 물론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 나의 ‘척’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다. 

8. 결국 다시 일으키실 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내 안에 우상들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내 안의 더러움들이 더 미워질 것이다. 예수님과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척’하게 만들어간다.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9.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간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아기 원합니다” 아멘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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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12 물 떠온 하인과 같은 삶

1. 오늘 본문은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에 관한 부분이다.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서 익숙한 본문이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이적을 나타내신 본문이다. 

2. 잘 아는 것 처럼 결혼식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고, 이는 심각한 결례였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부탁을 했고,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해서 기적을 행하신다. 

3.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5절) 였다. 포도주가 떨어진 실제적인 상황에 대해서 하인들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포도주를 어떻게 채워놓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젊은 예수라는 청년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4.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어머니 마리아가 충고를 주신대로 포도주가 있어야 할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다. 물이 가득 채워지고 나서 그 즉시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8절)

5. 하인들은 알았다. 이것이 물이라는 것을.. 연회장에 물을 가져갔다가 어떠한 일이 생길지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대로 행하였고, 물은 포도주로 변하였다.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은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즐겼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9절).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들만 아는 놀라운 은혜가 있다. 

6.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연회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이 일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먼저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하더라도 내 생각과 내 지식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놀라운 행하심을 알 수 없다. 뭔가 이뤄진 것은 알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지, 어떤 놀라운 역사를 행하였는지 알 수 없다.

7.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되, 내 생각과 내 전제와, 내 경험을 뛰어넘어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가진 것들을 넘어 그저 순종하고 싶다. 치열한 싸움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마음의 힘을 빼지 않으면 때때로는 너무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8. 하지만 물 떠온 하인들과 예수님만이 아는 그 은혜와 감격의 시간에 참여하고 싶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해가 되고 싶다. 어떠한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고 엎드리고 싶다. 그리고 주님과 나만이 아는 그 알콩달콩한 시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아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원한다.

9. 올 한해는 물 떠온 하인과 같이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한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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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18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1. 1월 3일 첫 예배 때 설교할 내용이 임마누엘이다. 그런데 오늘 새해 첫 날 본문도 마찬가지라서 참 감사하기도 하고, 혼자 큐티 책을 펴서 읽다가 흠칫 놀랐다. 하나님의 개그(?)를 보는 듯한 느낌.. 서프라이즈…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 

  2. 태초부터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신 곧 하나님께서 (1절)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14절). 놀라운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다니… 하지만 그 임마누엘로 인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온 세상이 변했고, 앞으로 다가 올 세상도 변할 것이다. 

  3. 세상은,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10, 11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 분의 자녀가 된다. 믿기만 하면 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4.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아들, 말씀이셨고, 태초부터 살아계셨던 그 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임마누엘의 약속을 붙들고, 그 분을 믿는 것이다. 그 분께서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5. 잊지말자.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능력이 있으신 것이지 우리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다는 그 복음이 능력이 있는 것이지 우리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2021년의 시작의 날에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할 것이 그것이다. 내가 하겠다고 깝치면 안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교만하면 안된다.

  6. 오직 임마누엘께서 내 삶에서 역사하시길, 그 분께 내 삶의 주권을 내어드리고 그 분이 내 삶을 다스려주시길 계속 나를 맡겨드려야 한다. 복음이 능력이다. 복음이 소망이다. 2021년 첫 날부터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결국은 NIBC, Not I but Christ인 것이다. 

  7. 복음이 더 드러나고 예수께서 더 드러나려면 세례요한의 모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자리와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8절) 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8. 2021년도 NIBC로 살고 싶다. 그 분은 더욱 더 흥하시고, 나는 더욱 더 쇠하였으면 좋겠다. 혈기로 날뛰지 않고, 겸손과 온유로 올 한해를 살아가기 원한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 임마누엘의 겸손의 모범을 내 삶으로 드러낼 수 있기 원한다. 

  9. 2021년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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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4:1-7 말씀대로 살아내는 삶의 무게를 가진 자가 되기 원합니다

 

  1. 오늘 본문은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한 해를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뭔가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내 삶 속에서 내가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지를 생각하여 보게 된다. 

  2.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1절). 심중에 하는 말로 하나님이 정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한 삶의 태도(잠 3:6) 일 것이다. 

  3. 나는 때때로 후자의 모습을 가지고 2020년을 살았던 것 같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하지만, 삶의 어떠한 순간에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아둥바둥 했던 것 같다. 

  4.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또 다른 순간에는 내 힘으로 하려고,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하려고 시도했었다. 1절은 그러한 태도를 “그 행실이 가증하니” 라고 설명하고 있다. 입술의 고백과 삶의 다른 그런 태도는 가증한 것이다. 

  5. 2021년은 어떻게 살기 원하는가? 내 입술의 고백과 삶의 흔적이 같아지기 원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고, 그렇게 고백한다면 또한 그렇게 살아가기 원한다.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내 계획으로 걸어가는 삶이 아니라 오직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가기 원한다. 

  6.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원한다.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기만 하는 가벼운 인생이 되지 않기 원한다. 말씀을 살아내는 삶의 무게로 말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또한 그런 2021년이 되기 원한다. 

  7. 이런 가벼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선교사라고 기도의 시간에 기억해주시고, 또 귀한 헌금을 보내주신 모든 사랑하는 동역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1년에는 좀 더 주님과 동행하고, 좀 더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하여 지혜있는 자로 태국의 영혼들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8. 수쿰빗 언약교회를 위해서도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순간순간 경험하며, 복음을 담대히 외칠 수 있는 성도들로 자라가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들 예준, 요엘, 마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태국교회의 예배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워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9. 묵상을 보내며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을 경험한 2020년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1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한 분, 한 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모든 사랑하는 동역자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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