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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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9:1-18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좋은 소식

여호와의 다스리심을 표현한 9절을 보면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파도를 무서워하는 제자들 앞에서 파도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예수님께서 왕이시고, 그 분이 이 땅을 다스리시며,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란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그 분의 자녀들이다. 

15-16절을 보면 그 자녀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 
주의 얼굴빛 안에 다니는 백성,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고,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시며, 어디에나 계시며 이 모든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두려워 할 필요도, 낙심할 필요도 없다. 그 분이 내 아버지이시다.

그 파도를 다스리스며,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분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가고 계신다.
아이들 문제, 필요한 재정 문제, 사역의 방향성 등등 나를 잠잠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은 늘 발생한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예수님께 맡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맡길때에야만 비로소 우리는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주님이 내 삶을 다스린다고 말하면서도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기도로 주님께 맡기자.
염려, 근심, 두려움을 주님께 올려 드리자. 주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자. 
8절에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그 분이 신실하심으로 성실하심으로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고 다스리신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계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 내 삶에서 이뤄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1.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그 최선까지도 주님 앞에 올려 드리자.
  2. 기도하자. 기도는 '주님이 나의 왕이시다’라는 가장 최선의 표현이다.
  3. 내가 정한 타이밍, 내가 정한 방법의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장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 왕이신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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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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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뭔가 꽉 막혀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런데 시편기자는 기도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때에 기도한다.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은 1절을 보면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다.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고, 답답하고, 꽉 막혀 있는 그 때에 기도를 하는 것도 너무 대단해 보이는데, 
그의 고백은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다. 

난 저런 상황이면 기도를 못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기껏해야 ‘하나님’을 수 없이 되내이는 정도 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 시편기자는 그 모든 일 앞에서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기를’믿고 있다. (13절)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열린 상황이든 꽉 막힌 상황이든 기도가 답이다. 

어제 아이들 문제로 아내와 대화하는데 이 상황이 정말 꽉 막힌 느낌을 받았다.
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 아이들이 드리는 수요예배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빠가 선교사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나 엄해지는 것을 보았다. 
일어설 때 일어서지 않는 것, 힘들다고 말하는 것,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고,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꾸만 강요하였다. 그리고 말이 자꾸만 엄하게 나갔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예배를 가르쳐야 할지, 나는 아빠로써 또한 선교사로써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고민이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이야기 하면서 그 갑갑함에 속이 상했다. 

예준이를 양육하는 문제와 더불어 생각이 쉽지 않았다. 예준이가 사춘기가 조금씩 시작되나보다...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계속 기도해왔는데,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들 속에서 정말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와 같았다. 
이 꽉 막힌 것 같고, 답답하고, 모르겠는 이 상황 속에서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시편의 기자처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이 시편의 기자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기도해야겠다. 
기도해야겠다.
아이들이 어려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리고 아이들이 이 급변한 상황과 자신들도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보이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더라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과 예배를 받으심을 가르쳐야겠다.

주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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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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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시온이 영광스러운 이유는 스스로가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스스로가 뛰어나서도 아니고, 스스로가 영광스러워서도 아니다.

1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온의 가치는 다른 어떠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왕께서 시온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시온이 가치 있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스스로가 아름다워서도, 뛰어나서도, 영광스러워서도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의 목숨의 값어치로 우리를 사신바 되었다.

우리는 아들 예수님의 목숨과 바꾼 존재들이다


나의 존재의 근원을 물질이나, 지식, 어떠한 성취에서 찾는다면 내가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존재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변의 어떠한 것들로부터 나의 존재감을 찾을 때가 많다


오늘도 하나님 안에만 거하길 원한다. 하나님만 사랑하기 원한다.

그래서 안에 머물러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길 원한다.

내가 사랑받을 없는 존재임을 묵상하고, 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도록 예수님께서 치르신 댓가를 기억하기 원한다.


  1.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아내와 아이들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이야기 해주자.
  2. 나만 사랑받는 존재가 아님을, 모든 영혼들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말고, 영광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의 눈빛 따스한 말을 건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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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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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4:18-25 

하나님께서 다윗에서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리라고 곳은 이방인의 집이었다

이스라엘식 이름도 아닌 그는 여부스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개처럼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었는가?

하지만 다윗은 일말의 의심도 없다.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베드로가 백부장의 집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이상을 보면서도 망설였던 것과 참으로 대조된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무엇인가를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했음이 아닐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방인의 타작마당에서의 예배에 그는 아무런 의문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단순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재앙을 그치게 하였다.


순종하면 되는데... 자꾸만 논리, 생각, 합리적인 추론에 빠질 때가 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함에 있어서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고비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가 되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만 할까?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 이해가 되어야 하고 ‘생각에 합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병에 걸리게 되었다


집에서 막내 마라가 ‘내가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고, 엎고, 망치는가?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나도  ‘내가병에 걸려서 모든 것을 ‘내가이해하려 하고 ‘내가생각하려 하고

내가순종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오늘 하루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삶을 살아내고 싶다.

순간순간 나는 작아지고, 그는 커지는 삶을 보내고 싶다.

매일 고민하고, 매일 묵상해도 삶의 주인이 ‘ 것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기도하며 다시 적용한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도 ‘내가 아니라 ‘아이들 생각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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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2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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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4:1-17


리더의 연약함은 그와 함께 있는 그를 신뢰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고통이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의지하려고 하였다

결과는 사흘 동안의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죽게 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생긴지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리더의 책임감에 대해서 보게 된다.

리더가 무너지면, 리더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게 되면

리더가 준비되지 않으면, 리더가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으면...

엉뚱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선교사는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리더의 자리에 있게 된다.

나는 어떠한 리더로 준비가 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하나님만 의지하는가?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가?


나의 연약함이 공동체와 가정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들을 보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예준이와의 관계에서 잘못한게 보인다

결국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세례요한이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말한 이유를 같다

내가 무엇이길래 가정에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있겠는가

나는 안된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데 나는 능력이 없으니

오직 주님께만 접붙임을 받고 싶다

연약하더라도 주님만 붙잡는 하루 되길...

주님께서 나를 선교사의 자리로 부러주셨는데

내가 선교사의 자리에 있다고 교만하거나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주님 저를 붙잡고,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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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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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3:8-17 누가 움직일 것인가?


다윗이 소원하였다. ‘베들레헴 성문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어쩌면 혼자말이었을지도 모를 다윗의 소원을 곁에 있던 세용사가 들었다. 그들은 최고의 재능을 지닌 최고의 용사들이었다.

그들이 다윗의 소원을 듣고 죽음을 무릅쓰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으로 달려간다.


어쩌면 혼자말이었을지도 모를 말을 들었던 용사들은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용사들이었다

사랑하면 들린다. 사랑하면 관심이 간다. 사랑하면 죽음도 무릅쓸 있다.


즈음에서 나는 예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래서 분의 마음이 들리는가

분의 마음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가? 분이 사랑하는 영혼들을 나도 사랑하는가?

질문 하나에도 쉽사리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하나님의 마음과 마음이 이심전심이 되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움직일 있었으면...

입으로 말하긴 쉽지만 매일의 삶에서 실천은 너무나도 어려운...

하지만 용사는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 실천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

뜨겁게 그리고 온전하게 사랑하기 원한다.

그리하여 분의 음성을 듣고, 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분의 마음이 있는 곳에서 살아내길 원한다.


다시 돌아온 태국은 행복하다

우리 샬롬과 영광교회의 형제들을 보는 것이 좋다.

그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을 삶으로 나눠주고 싶다

부족하더라도 사랑하고 싶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부족하더라도 오늘을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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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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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3:1-7 내 입에 하나님의 성령이..


다윗의 마지막 말이다 (1)

2절에 보면 그는 정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이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의 말씀이 자신의 혀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는 것을 절제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들은 얼마나 힘이 드는가

다윗의 인생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의 인생은 참으로 다사다난 했는데...

그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야기만 하기로 결정 한다.


살다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가

물론 농담을 하지 말아야 하고, 즐거움을 위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욕주의적인 관점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가


다윗처럼 결정해야 한다.

입에, 혀에, 말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도록...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우리 태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말만 하도록...


태국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단순히 말만, 단어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있는 진실함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언어를 구사할 있는 공부를 할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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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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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2:42-51 감사와 찬양은 주님이 삶의 주인이시라는 고백


우리의 삶에서 있는 일은 감사와 찬양이다.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감사하며 주의 이름을찬양하리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결론적으로이러므로라고 말하며 있는 것은감사찬양이다

다윗도 자신의 시의 마지막 단을 마무리 하는 부분에서 고백하는 것은감사찬양이다

다윗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힘으로 지금까지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고백이다


결론적이 아니라 삶에서 매순간감사찬양 흘러 넘치길 원한다.

감사찬양 흘러 넘치지 않는 순간은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닐 , 내가 바라는 모양으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

결국은내가 망해야 된다. ‘내가 이상 삶의 주인이 아닐 우리는 그제서야감사하고찬양 있는 것이다.

감사찬양 삶의 주인이, 삶의 이유가, 삶의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나는 요즈음 어떠한가?

삶에서감사찬양 넘치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가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다가 부딪치는 벽들로 인해 좌절하고 불평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지 말자.

출애굽의 수많은 역사를 보면서도 불평하다가 그들은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고백하지 못하고 40년을 방황하였다.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순간도 잊지 말고, 순간도 감사와 찬양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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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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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2:29-41 하나님은 나의 등불


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등불이시다

등불을 의지할 때에야만 어둠이 사라진다.

등불을 사용할 때에만 앞으로 나아갈 있다.


캄캄한 밤을 걸어가는 같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나의 등불이 되어주시지 않는다면

내가 과연 걸어갈 있을까

발자욱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있을까?

오히려 지금 내가 누구인지? 나는 여기에 있는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오늘도 등불을 의지한다.

오늘도 등불과 동행하려 한다.

내가 믿는 분이 분이고 내가 속한 분이 예수님이다

두려워 말자.

분이 나의 어둠을 밝히실 것이다

모든 염려를 분께 맡기자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나의 등불이시다

주의 말씀은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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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8.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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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2:21-28


다윗은 특징 하나는참으로 뻔뻔함 같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공의라고 말할 상황인가? 자신의 때문에 온갖 난리가 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고, 하나님이 그를 쓰시는 이유였다.


누가 주님 앞에 있는가? 누가 주님 앞에 자비를 말할 있는가? 누가 주님 앞에서 완전함과 깨끗함을 말할 있는가? (26-27)

사실 아무도 없다

누구도 주님 앞에 없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확신하였기에 그는 언제나 뻔뻔하게 나아갈 있었다.

그러나 다윗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우리 중에 다윗의 꽁무니라도 쫓아갈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는 실수가 있었지만, 그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었는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없다.

공의, 자비, 완전함, 깨끗함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을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있다.

어느 것도 내가 하나님 앞에 있도록 해줄 있는 것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공의가 아니라 자비가 아니라 완전함이 아니라 깨끗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의요, 예수님의 자비요, 예수님의 완전함이요, 예수님의 깨끗함을 따라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뻔뻔한 죄인이 되기 원한다.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를 잊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 되자.

내가 아니라 오직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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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