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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29 삼하 3:1-16
  2. 2018.07.29 삼하 2:12-32
  3. 2018.07.29 삼하 2:1-11
  4. 2018.07.29 삼하 1:17-27
  5. 2018.07.29 삼하 1:1-16
  6. 2018.05.17 렘 49:23-39는 롬 6:23절의 거울이다.
  7. 2018.05.15 렘 49:1-6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
  8. 2018.02.27 마 20:1-16
  9. 2018.02.26 마 19:23-30
  10. 2017.12.02 룻기 1:15-22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7. 2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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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3:1-16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뛰어난 다윗이었다. 언제나 따라갈 없는 믿음의 선배라고 생각했던 다윗의 연약함을 오늘 마주하게 된다. 다윗이 어려운 시간들을 마치고, 이제 유다의 왕이 되었고, 안정된 시간을 보낼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윗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아내() 자녀들이었던 같다. 점점 강하여지면서 하나님 분만을 의지하기 보다는 다윗은 가족, 많은 아내들을 의지하게 된다. 나중 벌어지는 밧세바 사건도 여기에서 부터 시작된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점점 강하게 하신다. 이것 또한 슬픈 일이고, 또한 은혜이다. 연약함이 바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시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때가 바로 회개의 시간이다. 이때 깨닫지 못하면 회개하지 못하고, 결국은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유력한 것들을 의지하고 있는가? 비자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유력한 사람들, 재정들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외에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내려놓자.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이 위험하다.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나를 채울 없고, 삶이 앞으로 나아갈 없다

지금이 은혜의 때이다.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숨기시며, 아직 계속해서 회개의 시간들, 기회들을 주신다. 더욱 주님 앞에서 머물며, 주님께 나를 드리고, 주님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내어드리자. 삶의 순간순간에서 주님의 의지하자. 묻고 듣자. 묻지 않으니 듣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은 사소한 것들부터 묻자


p.s. 드디어 오늘 짐이 온다. 정리를 통해서 태국에 조금 빨리 적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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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8. 7. 2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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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12-32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갑자기 신하들이 자신들의 공명심에 이끌려 북이스라엘 쪽의 신복들과 나와서 만나서 싸운다. 그러다가 많은 사상자를 내는 것이 오늘 이야기의 요약이다

도대체 이런일이 발생했을까


새로 새워진 왕국에서 한자리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누가 하라고 해서 것도 아니고 그저 모여서 서로를 시기하고 짓밟았다. 일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 앞에서 누가 높으냐를 두고 싸운 행동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안중에도 없고, 내가 땅에서 어떤 자리,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지에만 집중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기준에 휩쓸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만 하고 있는가?

처음에 이해가 안되는 본문이었지만 내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높은 자리를 두고 싸웠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오늘도 좁은 , 좁은 , 낮은 마음, 죽으려는 자세를 가지기 원한다. 순간 잊으면 나는 싸움의 자리에 서서 죽기까지 싸울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자. 그림 아래에서 내가 오늘 해야 일이 무엇일까? 여러가지 답답한 일이 많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분께 아뢰자. 분이 전부이며, 분이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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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7. 2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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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1-11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가운데 아주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고 인내함으로써 드디어 유다의 왕이 되었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아니라 먼저 헤브론에서 남쪽 유다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되기 이전의 다윗의 태도는 아주 주목할만 하다. 다윗은 물었다. 1절에내가 유다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하셨다. 다윗은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가리이까?’ 질문에 하나님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고,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다의 왕이 된다


다윗은 묻는다. 판단의 기준이 결코 자신의 생각이나 어느 것이 유리할까에 대한 자신의 고민들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시는데로 다윗은 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윗은 치밀하게 물었다.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순종하였다. 어제 정갑신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인상깊은 말이 나왔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듣지 않으면 두려움의 소리로 부터 듣게 된다그렇다. 우리 삶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 모르는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않는다면 이후는 불을 보듯 뻔한다. 안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 원수들의 소리가 들리게 되고, 그러한 소리가 들리게 되면 두려워하게 되며, 두려워하게 되면 듣지 못하고, 급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가장 고민은 비자의 문제이다. 미리 한국에서 같이 협의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비자를 주려고 했던 형제교단연합회 쪽에서는 잘못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쫓아가려고 내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일날 처음 비자문제에 대해 듣고 매우 심각했었다. 우리가 괜히 주님의 음성 듣고 걸음씩 간다고 것일까? 뭔가 풀리지 않는 같은데 우리가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염려도 생겼다. 하지만 어제 정목사님 설교와 주일, 그리고 오늘 큐티에서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내용은 동일하다. 주님께 묻고 들으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답답함, 막막함, 두려움에 함몰되어 그것들로 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오늘은 묻기 원한다. 비자에 대해서 사역에 대해서 묻기 원한다. 하나 들었다고 묻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묻기 원한다. 그러려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두려워도 결코 두려움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오직 주님께 묻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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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17-27


오늘 본문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위해 다윗이 애가를 지어 그들의 용맹과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다윗은 슬퍼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다윗이 사울로 인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너무나 힘든 그의 마음을 시편에 기록해 놓지 않았던가? 사울은 얼마나 다윗을 집요하게 질투하고, 그를 시기했었던가?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들을 뒤로 넘기고 다윗은 그를 위해 애곡하고, 그를 위해 애가를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자신이 왕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떠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라면 결코 하지 못할 행동들이다. 솔직히 삶에서 나보다 중요하게 여길만한 무엇이 뭐가 있을까? 때로는 심지어 아이들보다도 내가 소중한게아닌가?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보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들에 대해 귀히 여기고,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섬기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존중하자

비자 문제나 뜻과 다를 지라도 사람에 대한 존중을 내려놓지는 말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쁨으로 나아가며.. 아이들에 대한 존중도 결코 잊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고그리스도안에서 내가 죽는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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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1-16


사울이 죽은 후에 사울의 죽음을 다윗에게 알리러 청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가 다윗에서 그의 정적이었던 사울의 죽음을 고하고, 심지어 그가 죽이지도 않았던 사울의 죽음을 거짓으로 지어서 이야기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의 그러한 행동은 고대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으로 보여진다

오랜 정적을 죽인 덕으로 상과 보상을 얻으려고 했던...


하지만 다윗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다윗의 탁월함인 같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그를 그렇게 오래 괴롭혔던 사울의 죽음에도 너무나도 슬퍼할 있었다.

평범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샤울의 죽음이 결코 그를 기쁘게 만들지 못했다


나의 삶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으려면..

또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충분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는 통치함이 삶에 충분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나는 또한 삶에서 당연함을 쫓아갈 밖에 없게 된다


당연히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남들과 동일하게 똑같이 하게 된다.

그러면 결코 하나님의 특별한 일하심을 경험할 없게 된다

오늘 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오늘 비자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생각과는 매우 다르게 일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머리가 돌아간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저렇게 하면 되겠지? 이게 당연한게 아닐까?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분께서 인도하시는 걸음을 걷기 원한다.

머리로, 생각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지.. 아니면 다들 이렇게 하니까.. 그러한 삶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루 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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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9:23-39


오늘 말씀에는 세 나라가 나온다. 각 나라는 각 나라만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신다. 

다메섹은 낙담함, 흔들리는 마음이 그들의 죄였다. 게달과 하솔은 삶의 부유함을 통해서 마음도 부유했던 것 같다. 엘람은 활(힘)을 의지했다. 어찌보면 그렇게 큰 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죄들이 과연 그들이 죽을만큼의 죄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39절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하며 회복을 선포하신다. 오늘 전체 본문이 한 성경구절을 떠오르게 하였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라는 것은 다 똑같다. 죄는 죄이지 심한 죄와 약한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죄든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좀 먹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서 멀게 한다. 그런데 어느새 내 안에 죄의 경중을 따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저건 큰 죄니까 죽을만하고, 저건 작은 죄니까 죽을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심한 혹은 중한 죄 때문에 죽으신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죄, 우리가 작게 여기는 죄를 통해서도 죽으신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롬6:23을 통해서 죄의 결과가 사망임을 선포하고 있다. 어느새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죄의 심각성은 잊어버리고 죄의 경중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삶의 목적은 거룩이다. 레위기 11:45에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함을 더욱 더 쫓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고 싶다. 결코 내가 죄의 경중을 따지는 판단자,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로마서 6:23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건져주심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의 은혜가 임한다. "But Christ"의 은혜가 임한다. 우리를 통한 은혜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이다. 그것은 오직 주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오직 주님을 더욱 더 의지하기 원한다. 판단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에게도 but Christ의 은혜가 임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오직 그리스도만 간절하게 구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원한다. 


오 주님 나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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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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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9:1-6


하나님 없이 사는 모압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땅을 탐한다. 땅에 대한 야욕으로 점령한다 (1절). 그리고 재물을 의뢰하고 자랑한다 (4절).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면 무엇인가가 하나님 대신 자신들을 보호해주어야 하고, 그들은 그것이 땅과 재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맞는 방향인지 보다는 지금 당장 무엇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누구와 함께 정확한 곳으로 가느냐 보다는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그들의 목적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 사방에서 두려움이 임하여 무너지게 된다 (5절).

무엇을 소유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부되시는 그 한 분을 소유했느냐의 문제로 보여진다. 전부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 분이 명하실 때에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전부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려고 하는 자인가? 아니면 순간 사라질 것들을 소유하려고 하는 자인가? 선교사로 죽음을 향해 달려갔던 짐 엘리엇의 책 전능자의 그늘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인터넷 찾아보니 이렇게 번역하더군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오늘도 나의 삶이 이렇게 되기 원한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압처럼 없어질 것들을 탐하지 않고,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나를 기쁨으로 드리는 하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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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0:1-16


천국은 품꾼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주인의 약속에 따라 결정 되는 곳

내가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곳

내가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한 곳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천국(the Kingdom of God), 즉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내가 그 주인의 약속에 따라 그 주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곳

나 혼자서 있으면서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으니..

오늘도 그 주인과 동행하는 것을 경험하는 곳..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경험하는 그 곳..

이러한 곳이 천국이니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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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23-30


부자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부자만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도 천국에 들어가긴 마찬가지로 어렵다. 

왜냐하면 천국은 내가 가진 소유로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떠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는 곳도 아니다. 구원의 길은 언제나 그렇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우리 눈에 의인이든 의인이 아니든...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가능한... 은혜로만 들어가는 길이다. 


이 은혜의 길로 나를 초청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길을 걸어감에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지 않고 항상 옆에서 손 붙들고 걸어가심에 감사드린다. 여전히 이 구원의 길에 자신의 선행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태국 땅에는 수없이 많다. 

그 구원의 감격을 은혜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 힘으로는 안된다고.. 오직 에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by grace through faith) 


오늘도 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은혜인가? 아니면 나의 어줍짢은 믿음이나 행위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할 수 없다. 주님은 가능하다. 

오늘도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길 원한다. 

준비하고 있는 내 설교에서도 그리스도만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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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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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오미와 룻을 보면 매우 다른 것을 봅니다. 룻에게는 굳은 결심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를 따르겠다고, 그녀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녀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들이 될 거라고.. 

나오미에극 자신을 마라라 부르라고 한다. 그녀는 나오미였지만, 마라가 되고, 마라였지만 다시 나오미가 된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룻과 같은 믿음의 결단이었다.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에는 나오미였고, 그것이 없어질 때면 마라였다. 하지만 언제나 기회와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동행하기로 그녀가 결정만 하면 언제나 그녀는 마라였지만 나오미였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아 보인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과 동행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그냥 나 홀로 걸어가길 원하는가?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가? 누가 내 인생의 목적과 이유가 되고자 하는가에 따라 마라도 나오미도 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나오미의 삶을 살 것인가? 

마라의 삶을 살 것인가?

우리 딸이 마라이지만 룻과 같은 결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길 바라고, 나 또한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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