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3. 11. 3. 07:04
반응형

민 29:1-11”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

1. 본문은 속죄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7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2. 속죄일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날이다.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성회로 모이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3. 한국어 성경에는 없지만 영어 성경은 8절을 “but” 그러나 로 시작한다. 7절과 연결한다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8절).

4. 우리는 우리의 속죄를 위해 조금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규례대로 흠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숫가락을 올리는 일 정도일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하신 이유와 동일할 것이다.

5. 사실 우리의 죄사함과 용서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6. 이 상황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손을 놓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해야만 한다. “그러나"의 신앙으로 기도해야 한다. 어제 기도제목을 드렸던 좁 형제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는 지금 대장에 15cm의 종양이 있고, 암이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 전이가 되었는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7. 좁 형제를 생각하면서 참 마음이 힘들었다. 그는 태국 국가장학생으로 미국에 가서 MIT에서 학사, 석사를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를 마쳤고, 태국에서는 대학의 교수로 섬기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레이스 포인트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섬기다가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무척이나 선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순전한 마음과 교회를 진정으로 섬기는 형제였다. 

8. 그런데 그의 나의 31살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지금 11월 7일에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하나님 왜 하필 이 형제입니까? 왜 이런 젊고 장래 유망한 청년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형제가 태국과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라는 고백이 수도 없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고민과 포기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한다. 내가 이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나"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기도를 부탁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나" 기도 하는 것이다. 

9. 주님의 뜻을 아직 모르겠다. 주님이 이 일을 어떻게 인도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해야겠다. 좁을 위해 수시로 기도하고, 주님께서 그 가정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야겠다. 내일 오후에 목양팀에서 좁 형제네 집으로 방문한다. 주님 좁 형제를 고치시고, 낫게 하시고, 그 가정에 복음을 전하소서. 오늘도 좁 형제를 위해 함께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0. 오늘도 샬롬 

*사진에서 왼쪽 앞쪽에 앉은 형제가 좁 형제입니다. 사진은 그레이스 포인트 교회에서 리더들이 와서 저희 교회와 교제할 때 찍었던 사진으로 지금 그레이스 포인트 교회에서도 좁 형제를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꼭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11. 3. 07:02
반응형

민 28:16-31 아무것도 하지 말라 (젤 아래 기도제목 보시고 꼭 기도 부탁드립니다)

1.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이 본문에 나온다. 유월절을 다른 절기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2. 다른 절기들도 제물을 바친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도에 따라 제사를 드린다. 유월절도 물론 그러하다. 무교병을 먹어야 하고(17절), 수송아지와 숫양을 정해진 대로 하나님게 드려야 한다(19-24절)

3. 그런데 유월절의 본문에서는 유월절의 시작과 마지막 날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18절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25절 “일곱채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두 번이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유월절에 그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고, 묵상케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 보았을 뿐이다. 이 원리는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함을 통해 기여를 하거나 구원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6. 오직 언제나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우리는 지켜 볼 뿐이다. 우리는 조금도 기여할 수도 뺄 수도 없는 그저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만히 멈추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보는 것이 믿음의 행동일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뿐이다.

7. 이번 여행이 그랬다. 사실 3주 정도를 묵상을 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국에 10월 11일-11월 2일의 일정으로 다녀왔기 때문이다. 기도편지에서 보신 분도 있겠지만 한동대 김영애 권사님의 추천으로 미국의 코너스톤 교회에서 하는 커넥션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고, 미국에 간 김에 그간 교제하던 Acts2 Network(그레이스 포인트 교회)의 교회들을 둘러보고 몇 시간 전에 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8. 미국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미국 상황도 모르고, 차도 없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데려가 주시는 대로, 데려와 주시는 대로, 일정을 잡아주시는 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정말 방콕에서 생각하고 출발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들을 보게 하시고, 묵상하게 하시고, 또 너무나도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주셨다. 내가 미국을 잘 알아서 이렇게 하려고 해도 못했을 정도이다. 정말 그냥 하나님께서 인도해나가시는 것을 지켜보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곧 한 번 정리해서 나눌 예정이다). 

9. 그러나 미국 일정 뿐만이 아니라 오늘의 나의 삶도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하려고 아둥바둥 대고, 애쓰고,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일하실 수 있도록 힘을 빼고,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릴 수 있기 원한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내가 조금도 하나님의 선교에 더하거나 뺄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도록 나의 삶을 올려 드리자. 나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자. 그게 Not I, but Christ의 삶 아니겠는가? 

10. 오늘도 샬롬


*3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간 소식 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가정의 11월 기도편지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기도편지 안에 좀 더 내용이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셔요. 특별히 좁 형제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와서 지금 마히돈 대학교 교수 (31살))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기도편지에는 아직 암 여부를 모른다고 되어 있지만 대장암 진단을 받고 11월 7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몇 기인지, 어느정도 상황인지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수술이 잘 되고 잘 회복 되어 계속 같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좁 형제와 모든 수술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10. 3. 13:50
반응형

민 15:32-41 술을 만들어 달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술이 되어 주자

1.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라면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2.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소홀하게, 때로는 건너 뛰기도 한다. 우리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 수시로 드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3. 오늘 본문에서도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 사람이 나온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2절)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게 보이지 않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다.

4. 하지만 하나님도 안 보이고, 사람도 안 보이니까 이 사람은 안식일에 일을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죽게 되었다 (3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달도록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8절)

5. 이는 인간의 악함과 요령피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었다.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39절)

6.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율법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살펴보고 계시다는 의미였다. 이 술을 볼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율법을 기억하여,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이다. 

7. 마치 교회 차를 운전하고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 차에 붙여진 교회 이름을 보고 있는데, 어찌 내가 함부로 운전하며, 법을 어기며, 얌체같이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이 지금 나를 살펴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욕심과 죄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8. 술을 달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숨기고, 군중 속에서 묻혀서 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 그레이스포인트 교회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절대로 형제 리더 혼자만 어디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항상 둘로 보내고, 방도 같이 쓰게 한다고 하였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실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술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에게 이 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또 누구인가? 선교지에서 나를 지킬 수 있도록 보이는 술을 만들어야 하고, 장식으로만 달고 다니는게 아니라 열심히 보고, 내 머리와 욕심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만 신뢰하여야만 한다. 

9. 익명성에, 군중 속에 숨으려고 하지 말고 좀 더 투명하게 오픈하고, 좀 더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야 한다. 술을 스스로에게 또 남에게 잘 보이게 달고 다니는 하루가 되자.

10. 오늘도 샬롬

* 오랫만에 저희 목양팀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태국 두 가정, 미국 선교사 한 가정, 그리고 저희 가정까지 총 4가정이 함께 수쿰빛 언약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각 가정들이 가정적으로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는 시기인데,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도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술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26. 11:52
반응형

민 13:21-33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1. 12명의 정탐꾼이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땅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임무는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보고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은 그 임무를 위해 열심히 그 지역을 다녔다. 오늘 본문은 그 보고의 내용이다. 

2.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땅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7절) 그러나 그들의 보고는 살짝 이상하다. 그들을 그 땅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지 모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이라고 말한다. 

3.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으로 생각하는 것과 ‘모세가 명령하여 보낸 땅'으로 보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왜나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포함되어 있고, 약속을 하신 하나님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세가 명령하여 보낸 땅이라는 표현에는 인간 모세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포함되고, 우리의 능력과 책임으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결국 그 간극은 갈렙과 여호수와의 보고와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로 나누어진다. 갈렙의 보고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0절)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던 갈렙은 우리가 능히 취할 수 있다고 한다.

5. 그러나 나머지 열 정탐군의 보고는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33절)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여겼고, 아마도 가나안 사람들도 그렇게 볼거라고 생각했다. 

6. 즉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용사로 여겼다. 자신들이 용사여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뛰어나신 용사이심을 알아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10가지 재앙으로 치시며, 홍해를 가르신 분이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자신을 메뚜기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강해 보이는 가나안을 보았고, 키가 크고 장대한 자들을 본다고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지 못한 자들이었다. 

7. 우리의 불신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 고정한 시선을 놓치는 즉시 우리는 불신앙에 빠지게 되며,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을 의지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보다는 지금 보이는 육적인 세계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8. 베드로가 주님을 의지할 때에는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하다가 바다에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이다 (마 14:22-33).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현실인가?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손인가? 아니면 크신 하나님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가?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로 고정되어 있는가? 히브리서 12: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NIV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킬 때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어려움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그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다.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얼마나 작고 무능한 존재인가?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께,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때 우리는 이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다. 

9. 지금 내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 작은 능력인가? 조그마한 성취인가? 실패를 통해 무너지는 자존감인가?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수쿰빛 언약교회가 지금 다시 뭔가 일어서려고 하는 시점이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자. 

10. 오늘도 샬롬 

1번 사진은 저희 목양팀인 비우, 버드네 가정 심방 사진
2번 사진은 금요일 케어그룹 사진
3번 사진은 주일 예배 모습입니다. ^^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23. 01:33
반응형

민 11:16-25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들의 원망은 어제 본문에 나오는데 (4-9절)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만나가 질렸고, 이집트에서 먹던 것들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2. 모세의 입장에서 화가 날 만한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고,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을 매 끼니 먹이시고, 위험한 동물들로 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셨다. 

3.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정도 해결되니까 기호식품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4절에서는 이를 ‘탐욕을 품었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습이다.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게 우리 주특기 아닌가? 

4. 하나님 입장에서 기분이 어떠셨을까? 큰 기적과 능력으로 구해줬더니 이전에 이집트에서 살아가면서 먹었던게 좋았다고 불평한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그들에게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약간 뒤끝을 보이시면 말이다).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19-20절)

5. 이스라엘이야 그렇다 쳐도 모세의 반응이 의외다.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때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21-22절)

6.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장 앞자리에서, 자신의 손을 통해 체험한 자가 아닌가? 그와 같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하였거나,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모세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한다.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도 변하지 않았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할 뿐이고, 기적으로는 결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7.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이스라엘을 그 의로우신 오른 팔로 구원하셨다. 사랑하셨고, 구원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불평하고, 여전히 탐욕을 부리고, 여전히 또 다른 기적을 (마치 내가 그럴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당연하게 요구한다. 죄인이며, 악한 존재들이다. 

8. 하나님의 손이 결코 짧지 않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게에 충분하시며,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고, 우리의 아는 것 보다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또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동안 당연하게 요구했던 것들을 멈추게 된다. 하나님을 탐욕으로 나의 램프의 지니처럼 사용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감사하게 된다. 

9. 오늘 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복음 만이 나를 겸손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용기있게 하는 유일한 것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을 알아야 겸손하게 된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감사하게 된다. 불평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모세가 바로 나의 모습임을 잊지 말고 교만한 자세를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자. 

10. 오늘도 샬롬 

*사진은 웨슬리 신학교에서 신약 수업 후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오늘 오후 2시(한국 4시)에 오순절 신학교에서 다음 강의와 장기적인 방향을 논의할 수도 있는 회의를 가집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1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9. 15:25
반응형

민 10:1-10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생명이다

1. 나팔은 지금처럼 음향시스템이 없던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필요했던 신호 수단이었다. 이 나팔은 이스라엘의 단합된 행동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어떻게 부는지에 따라 해야 할 행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2. 두개를 불 때와 한 개만 불 때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3-4절)

3. 또 한 번 크게 불면 동쪽 진영들이 행진하고 (5절), 두번째로 크게 불면 남쪽 진영들이 행진해야 한다 (6절). 또한 이 나팔은 전쟁을 하러 나갈 때도 분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9절). 또 절기와 번제물을 드릴 때에도 불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억하시겠다고 하셨다 (10절).

4. 이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는데에도 사용 되지만 또한 하나님께 지금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데에도 사용된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가 지금 울리고 있는 나팔 소리가 몇 번째인지, 소리가 어떤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알지 못하거나, 행진해야 할 때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5. 광야에서의 개인의 낙오는 곧 죽음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두가 가야 할 때 함께 가지 못하고, 모두가 움직여야 할 때 함께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도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6. 아마도 이러한 것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나팔로 말씀하시진 않는다. 성경과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듣는 것일 것이다. 잘 들어야 한다. 내 자신이 죽음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또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7. 듣고, 또한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들음은 듣는 것이 아니다. 나팔이 울려서 행진해야 하는데, 소리만 듣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은 들은 것인가? 들음은 순종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8. 오늘 나는 듣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혹은 듣기만 하고 순종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정으로 순종을 전제로 듣고 있는가? 제대로 순종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에 있다.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생명이다’. 오늘 주신 이 문구처럼 들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9.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삼상3:10 사무엘과 같이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10. 오늘도 샬롬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8. 11:42
반응형

민 9:15-23 나의 생각, 전제, 가치관이 바뀌어서 순종하는 자가 되길

1. 성막을 세우고 나서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성막 위에 있었다 (15-16절). 그런데 이 구름과 불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2.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름이 움직이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추면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7절)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순종이었다.

3. 그런데 문제는 이 구름과 불이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 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2절)

4. 때로는 이틀만에, 때로는 한 달만에, 때로는 일 년 만에 움직이게 되더라도 그들은 구름이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결코 이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이든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은 바로 움직였다. 

5. 하나님이 없이는 조금도 살아낼 수 없는 광야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의 음식을 어디에서 조달해서 먹을 수 있었겠는가? 목이 마를 때 물은 어디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6. 광야에서의 그들의 호흡함 그 자체가 곧 기적이었고, 매 끼니마다 먹는 음식과 물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구름이 움직이지 않을 때 어찌 움직일 수 있으며 구름이 움직일 때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7. 하나님께서 이렇게 실제적으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시기에는 순종하기가 참 쉽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 보다는 내 생각을 따르기가 더 쉽다. 나의 호흡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라 나의 운동과 건강 관리로, 내가 먹는 음식이 하나님께서 공급함이 아니라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지불한 대가로 먹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보다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8. 지금 나의 호흡이 누구 때문인가? 내가 잘 관리해서 지금 잘 호흡하고, 문제 없이 지내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 때문인가? 지금 나의 먹는 음식이 누구 때문인가? 내가 번 돈 으로 지불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적절한 태양 빛과 비를 내리셔서 공급하신 것인가? 내 생각과 전제가 바뀌면 순종하게 된다. 내가 내 인생에 조금도 기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조금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 내가 움켜쥐려는 마음, 내가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배려하게 되고, 나눠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9. 아침에 한 자매로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이번 한국 방문을 위해 헌금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 자매를 실제로 만난건 3번 정도이다. 그런데 자매가 자신을 위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는 재정을 헌금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참 감사하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생각과 전제, 가치관이 바뀐 분들로 인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또 사역이 이뤄진다. 나 또한 하나님으로 인해 나의 생각과 전제, 가치관이 바뀌었음이 오늘 하루의 내 삶으로 증명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그레이스포인트 단기팀이 와서 사역하고 간 이후 매일 왓타텅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저희 까페에 와서 놀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을 위해 악기(기타, 피아노), 언어(한국어, 영어), 보드게임 등의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중에서 몇몇 친구들이 계속 주일 예배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뺑 자매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있는 직장인으로 우울증으로 인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가 처음으로 저희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나니 자매이고 세 번째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숩, 프랭크 유로 형제, 그리고 뚠 자매입니다.이 그룹들은 왓타텅 중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수쿰빛 언약교회가 이 형제, 자매들을 잘 영접하고,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4. 16:44
반응형

민 7:12-47 21마리의 짐승들의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1. 성막이 완성되고 나서 헌물을 드리는 것이 주된 본문의 이야기이다. 민수기 7:1-11을 보면 먼저 모세가 와서 드리고, 이스라엘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들의 우두머리들이 헌물을 드린다 (2절). 

2. 그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서 각 지파에서 대표들이 나와서 헌물을 드린다. 첫 번째로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와서 재물을 드린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형들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제로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장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나아왔다. 

3. 둘째 날은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18절), 셋째 날에는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24절), 넷째 날에는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30절), 다섯째 날은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36절), 여섯째 날에는 갓 자손의 지휘관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헌물을 드린다 (42절).

4. 각 지파가 다른 날 헌물을 드리지만 그들의 헌물은 동일하다.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 각 그릇에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에는 향을 채웠고,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 화목제물로는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였다. 

5. 그런데 본문을 보다 보면 하나님께 직접 드리게 되는 은 쟁반, 금 쟁반,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고운 가루나 향 보다 더 많은 양(?)의 제물들(총 21마리의 짐승들)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즉 우리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드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하나님은 너무나도 거룩 하신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않고, 그 거룩함과 죄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직접 드려지는 제물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제물들이 바쳐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7. 그러나 이게 우리 인간의 절망적인 한계이고, 우리의 죄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러한 부분을 잊고, 내가 거룩하다고 (그러면서 남들은 아니라고..) 혹은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내가 하나님 처럼 되려고 노력하는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 엄청난 간극을 잊어버리는 것이 모든 죄의 시작이다. 

8. 물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굳이 21마리의 짐승들을 드릴 필요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원한 길을 만드신 것이다.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절차가 간단해진 것이 무례함으로 드러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를 생각해보게 된다.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고, 인스턴트 식의 만남을 추구하지는 않는가? 하나님 앞에 오래 서 있고, 묻고,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판기와 같이 내가 원하는 응답, 내가 원하는 결과를 무례하게 하나님께 요청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9. 편리함, 편안함이 우상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헌물하기 위해 수많은 대가를 치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나 또한 불편하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기 원한다. 그리고 또 나의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지난 번 기도편지에 보내드렸던 따완 자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가서 제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11월 13, 14일 중에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으로, 심재우 선교사가 함께 들어가서 안내와 준비를 같이 하고 돌아오게 될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절차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저와 따완 자매의 항공료가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따완 자매가 제빵을 배우며 한국에서 지내는 일에 대해 재정적으로 지원해주실 마음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샬롬

**사진에서 오른쪽에 안경낀 자매가 따완 자매이며, 만 18살이고, 저희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양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하게 잘 자라고 있음이 참 감사한 자매입니다. ^^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